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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가족 추천 코스

[경남 하동군, 전남 구례군][가족 추천 코스] 시끌벅적 시장 속으로

by 어느 개발자의 블로그 2022.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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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벅적 시장 속으로

"구경 한 번 와보세요~보기엔 그냥 시골 장터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화개장터는 전라도와 경상도의 3개 시군이 맞닿는 곳에 위치해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사람 구경도 하고 섬진강 별미, 참게탕도 맛보며 하동의 매력에 푹 빠져보자.
※ 소개 정보
- 코스 총거리 : 20km


 




화개장터

- 홈페이지 : 화개장터 블로그 http://blog.naver.com/hwagae2010
- 전화번호 : 055-880-6051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배경이 된 곳으로도 유명한 화개장터는 영호남의 접경에 위치하여 남해안의 수산물과 소금, 비옥한 호암평야의 곡물, 지리산록의 산채와 목기류들의 집산지로써, 하동포구의 발달된 수로를 통해 전국으로 유통되어 조선 중엽부터 해방전까지 번성기를 맞아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시장이 되었다. 그러나 교통과 유통구조의 발달로 쇠퇴하여 옛날 모습의 자취를 감추었다.
화개장터는 지리산에서 시작한 화개천과 섬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열리던 전통적인 재래식시장이며 5일장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곳이다. 최근에는 상시시장이 개장되어 특별히 5일장이 따로 서지는 않는다.
 조영남의 "화개장터" 노래로 유명해진 화개장터를 찾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전통적인 모습으로 복원하기 위해 부지 2,540 여평에 사업비 16억원을 들여 재래식 장옥과 녹차전문상가 등 편의시설 조성하여 2001. 4. 5 제 9회 화개장터 벚꽃축제 개막과 함께 개장을 하여 상설시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동백식당

- 전화번호 : 055-883-2439
화개장터 옆의 화개버스터미널 뒤편엔 5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동백식당이 있다. 간판에서부터 각종 방송을 탄 흔적들이 보인다. 실내 곳곳 역시 방송에 출연한 사연들로 가득하다. 아마 그 방송을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으리라. 실내에 걸린 동백식당의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1969년 당시 쓰러질 듯 아주 작은 식당 사진이 보인다. 오래된 식당임에 틀림없다.
이곳 동백식당의 주인장은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아 어렸을 때부터 섬진강에서 참게잡이를 했다고 한다. 현재 화개지역에서 참게잡이 허가권은 동백식당이 유일하다고. 동백식당의 자랑거리인 참게탕은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섬진강 참게를 이용해 그 맛이 담백하고 구수하다. 이곳 참게탕의 비법은 특별한 육수를 쓰지 않고, 참게만 넣고 푹 끓인 후 고추장으로 양념을 한다는 것. 다른 곳은 고춧가루를 쓰기도 한다는데, 동백식당에서는 잘 숙성된 고추장만 사용한다. 그 얼큰하고 시원한 맛이 실로 일품이다.
참게탕 외에도 하동의 명물, 재첩으로 만든 음식도 별미. 재첩국의 맑은 국물은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숟가락엔 굵은 재첩이 알알이 잡힌다. 하동에서도 가장 좋은 재첩을 공수 받기 때문에 알이 크고 맛도 좋다. 동백식당의 맛은 주인장의 어머니 조정순 씨로부터 비법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의 안주인도 시집을 온 후 시어머니에게 비법을 전수받았다고. 주방장 또한 20년의 세월을 함께 해온 터라 손맛이 베테랑이다.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대대손손 가업을 이어온 동백식당은 앞으로도 자녀들에게 물려주어 대를 잇게 할 생각이다.




구례 석주관성

- 홈페이지 : http://culture.gurye.go.kr
http://www.cha.go.kr
석주관은 전라도 경상도를 연결하는 지리산의 요새이다. 구례읍에서 섬진강을 따라 하동 쪽으로 10㎞쯤 가다 보면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에 이르는데, 좌측으로 높이 약 10m의 낭떠러지가 나온다. 이곳이 석주관으로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은 삼한시대에 마한과 진한의 경계였으며,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경계로 군사상 요충지였으며, 고려 때에는 남해에서 침입한 왜구를 막기 위해 성을 쌓은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튼튼히 하기만 하면 전주에서 구례, 남원을 향해 넘어오는 왜적을 방어할 수 있는 호남의 전략적 요충지로, 고려말 왜구가 횡행함에 따라 진을 설치하여 운영하였으나, 조선이 개국하고 정국이 안정되어 감에 따라 진을 폐지하여 황폐되었는데, 1592(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전라도 방어사 곽영이 성을 쌓고 구례 현감인 이원춘에게 석주관 방어를 담당하게 하였다.이는 현재 남아있는 성곽의 잔존부를 통해 쉽게 알 수 있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난 후 조정에서는 이곳 석주관에 고려말 때처럼 만호진을 설치하여 왜구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지만, 활용되지 못하고 황폐해지고 현재에 이른다. 성벽의 전체길이는 약 750m이며, 높이 1∼1.5m, 아래폭 1.4∼1.5m 위폭 70∼90㎝ 정도로 대부분은 무너져 훼손된 상태로 근래에 들어 다시금 복원을 하고 있다.

면적 : 29,965㎡
성벽 : 전체길이는 약 750m이며 높이 1∼1.5m, 아래 폭 1.4∼1.5m, 윗폭 70∼90cm 정도로서 대부분은 무너진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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