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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힐링 추천 코스

[충북 제천시][힐링 추천 코스] 바라만 봐도 좋은 청풍명월 제천

by 어느 개발자의 블로그 2021.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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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만 봐도 좋은 청풍명월 제천

제천은 예부터 바람 맑고 달 밝은 고장이라 하여 청풍명월로 불렸다. 가는 곳마다 청풍호반의 푸른 물과 사방으로 물결치는 산들이 청풍명월의 비경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는 1박2일의 여정을 시작한다.
※ 소개 정보
- 코스 총거리 : 41.4km
- 코스 총 소요시간 : 1박2일


 




제천 의림지

제천 의림지

- 홈페이지 : https://www.jecheon.go.kr/
* 삼한시대에 축조된 저수지, 의림지 *
충청도를 호수의 서쪽이라 하여 호서지방이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서 말하는 호수가 바로 의림지를 가리킨다. 그만큼 의림지는 오래되고 유명한 저수지이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11호인 의림지는 삼한시대에 축조된 저수지로, 본래 임지라고 했다. 호반 둘레 1.8km, 만수면적 151,470㎡, 저수량 6,611,891㎡, 수심 8~13m의 대수원지로 289.4 정보의 농지를 관개한다.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 수리 시설 가운데 하나로, 수구를 옹기로 축조하여 당시의 농업기술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현재는 제천 지방의 경승지로, 호수 주변에는 순조 7년(1807년)에 세워진 영호정과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 그리고 수백 년을 자란 소나무와 수양버들, 30m의 자연폭포 등이 어우러져 풍치를 더하고 있다. 특히 특산물로서, 산란하는 해빙기에만 볼 수 있는 공어(일명 빙어)가 있는데, 회어로서 진미를 맛볼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으며, 주위에 솥밭공원, 국궁장, 파크랜드 등이 조성되어있어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 제천 의림지와 제림 [堤川義林池-堤林] *

의림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리시설 중의 하나로, 조성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한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악성(樂聖) 우륵(于勒)이 개울물을 막아 둑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그로부터 700년 뒤 이곳에 온 현감 박의림(朴義林)이 좀더 견고하게 새로 쌓은 것이라고도 한다. 조선 세조 때 정인지(鄭麟趾)가 체찰사(體察使)로 이곳에 왔다가 3도의 병력 1,500명을 동원하여 대대적으로 공사를 시행했다는 기록 등이 있다.
제림은 의림지 제방 위에 조성된 소나무와 버드나무 숲이다. 주종은 수백 년 묵은 노송이며 버드나무, 전나무, 은행나무, 벚나무 등이 함께 자라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낸다.

[문화재 정보]
지정종목 : 명승
지정번호 : 명승 제20호
지정연도 : 2006년 12월 4일
종류 : 명승지
크기 : 지정구역 211,038㎡





청풍호반케이블카

청풍호반케이블카

- 홈페이지 : http://www.cheongpungcablecar.com/
수도권역에서 1시간 30분, 전국 3시간대 거리에 위치한 내륙의 바다, 천혜의 환경과 치유와 회복을 지향하는 청풍명월 본향인 이곳 충북 제천 청풍에서 봉황의 날개를 타고 날아올라 청풍명월의 비경을 누비는 아름다운 여정을 시작한다. 청풍호반 케이블카는 청풍면 물태리에서 비봉산 정상까지 2.3km 구간을 왕복 운행하는 케이블카 시설로 오스트리아에 본사를 둔 도펠마이어社의 최신 기종인 D-Line 모델이다. 10인승 캐빈 43대가 운행되며 그 중 10개의 캐빈은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탈 캐빈으로 구성되어 발아래의 아찔함을 느낄 수 있다.
평균 5m/s의 운행 속도로 2.3km의 거리를 약 10분 만에 비봉산 꼭대기에 도달하며, 케이블카 수송능력은 시간당 최대 1,500명, 일일 최대 15,000명까지 수송이 가능하다. 케이블카 상부 정차장인 비봉산은 봉황새가 알을 품고 있다가 먹이를 구하려고 비상하는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청풍호 중앙에 위치한 해발 531m의 명산으로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흡사 다도해를 보는 듯한 빼어난 풍광을 가지고 있으며, 국내 최초로 정상까지 케이블카가 운행되어 어린이나 노약자분들도 편안하게 케이블카를 타고 청풍호의 비경을 즐길 수 있다.





청풍문화재단지

청풍문화재단지

청풍은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문물이 번성했던 곳으로 많은 문화 유적을 갖고 있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청풍면 후산리, 황석리, 수산면 지곡리에 있던 마을이 문화재와 함께 수몰될 위기에 있었다. 충청북도청에서는 1983년부터 3년간 수몰 지역의 문화재를 원형대로 현재 위치에 이전, 복원해 단지를 조성했다.
단지에는 향교, 관아, 민가, 석물군 등 43점의 문화재를 옮겨 놓았는데 민가 4채 안에는 생활 유품 1,6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고려 때 관아의 연회 장소로 건축된 청풍 한벽루(보물 528)와 청풍 석조여래입상(보물 546) 등 보물 2점과 청풍부를 드나들던 관문인 팔영루(충북유형문화재 35), 조선시대 청풍부 아문인 금남루(충북유형문화재 20), 응청각(충북유형문화재 90), 청풍향교(충북유형문화재 64) 등 건축물 및 옛 도호부 시대의 부사나 군수의 송덕비, 선정비, 열녀문, 공덕비 등이 세워져 있다. 한벽루에서 충주호가 한눈에 보이며 주변에 비봉산, 구담봉, 옥순봉, 능강구곡, 금수산, 단양팔경, 월악산국립공원, 수안보온천 등의 관광지가 있다.

* 제천 청풍 한벽루 (보물 제 528호)
이 건물은 고려 충숙왕4년 (1317)에 청풍현이군으로 승격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관아의 부속건물이었다.1972년 대홍수로 무너진 것을 1975년 원래의 양식대로 복원하였다. 이 루는 석축토단의 자연석 주초석 위에 기둥이 배가 부른 엔타시스 수법을 쓴 층 아래기둥을 세우고 마루를 설치하였으며,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팔작지붕에 주심포계 양식이다. 누의 우측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계단식 익랑 (대문간에 붙여 지은 방)을 달았다.

* 제천 청풍 응청각
이 건물의 용도는 알 수 없으나, 본래 한벽루의 좌측에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처음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명종 초 이황 (1501~1570)이 단양군수로 있을때 '응청각'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인조15년(1637)에 충청감사 정세규의 일기에 응청각에서 유숙한 기록이 있다. 고종37년(1900)에 부사 현인복이 중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198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2층 누각으로 아래층은 토석축의 담으로 벽을 막고, 그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건물 좌측에 목조 계단을 만들어 2층으로 오르내리게 하였다.

* 제천 청풍 금병헌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34호)
이곳은 청풍부의 청사로 쓰였던 동헌건물이다. 청풍은 삼국시대에 사열이현이었으나, 신라 경덕왕때 청풍현이라 하였다. 고려 충숙왕 때 지군사가 되고, 조선 세조 때 군이 되었다. 현종 초에 도호부로 되었으며, 고종32년에 군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국역의 통폐합에 따라 청풍면이 되었다. 이 건물은 숙종7년(1681)에 부사 오도일이 처음 지었다. 그후 숙종 31년(1705)에 부사 이희조가 중건하고, 영조2년(1726)에 부사 박필문이 중수하고,권돈인이 편액을 써서 걸었다. 고종 37년(1900)에 부사 현인복이 전면 보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인하여 198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정면 6칸, 측면3칸의 팔작집이다. 일명 명월정이라고도 하며, 내부에는 '청풍관'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 금남루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호)
이곳은 청풍부의 아문으로 '도호부절제아문'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순조25년(1825)에 청풍부사 조길원이 처음 세우고 현판도 걸었다. 고종7년(1870)에 부사 이직현이, 동 37년(1900)에 부사 현인복이 각각 중수하고 1956년에도 보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조성으로 인하여 198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정면3칸, 측면 2칸의 팔각집으로 팔각의 높은 돌기둥 위에 세운 2층의 다락집이다.

* 자연학습원
꽃밭 - 구절초, 한라구절초, 해국, 쑥부쟁이, 빗자루국화
꽃길 - 조팝나무길, 백철쭉길, 산철쭉길, 영산홍길, 진달래길

* 제천 후산리 고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5호)
이 집은 본래 청풍면 후산리 105번지에 있었던 민가였다. 충주댐의 건설로 1985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조선말기에 지어진 ㄱ자형의 팔작 기와집이다. 대청마루를 기준으로 하여 동남을 향하고 있다. 대청의 우측에 2칸 크기의 건너방과, 툇마루를 높이 하고 그 밑에 함실 아궁이를 두고 있다. 대청은 좌측으로 웃방이 있고 웃방에서 동쪽으로 꺾어 대청의 좌측으로 후퇴를 후보하여 제사방으로 꾸미고있다. 전체적인 내부의 배치가 특이하다. 중부지방의 보편적인 민가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 제천 도화리 고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3호)
이 집은 본래 청풍면 도화리에 있었던 민가였다. 충주댐의 건설로 1985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조선 말기에 지어진ㄷ자형의 우진각 기와집이다. 중앙에는 3칸 크기의 대청을 이루고, 좌측 간살은 방, 부엌, 광으로, 우측 간살은 방2칸과 2칸 크기의 부엌으로 되어 있다. 둥근 통나무 굴뚝과 부엌 살자창옆의 관솔을 피워 어둠을 밝히는 시설은 태백산맥 일대의 산간지대 민가에서 볼 수 있는 특징적인 것이다. 본래 이전하기전의 흔적으로 보아 앞쪽에는 바깥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튼 ㅁ자형의 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 청풍 황석리 고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4호)
이 집은 본래 청풍면 황석리 164번지에 있었던 민가이다. 충주댐의 건설로 1985년 지금의 자리로옮겨 복원한것이다. 집의 구조는 안채와 문간채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 겹머리 기와집이며, 조산말기의 건축물로 좌측(서쪽)으로부터 부엌, 안방, 웃방을 나란히하고 끝에 사랑방을 두었다. 아방과 웃방 앞에는 길게 툇마루를 두고, 사랑방 퇴는 부엌으로 구성하였다. 툇마루와 사랑부엌 사이의 퇴주(각주) 이름이 특이하다. 문간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초가집이다. 특히, 청풍문화재단지가 위치한 물태리에서 제천까지 약 10km 구간은 충주댐 건설로 인한 청풍호반 조성시 아름다운 금수산 5부 능선상으로 만들어진 구불구불한 도로로, 이 길을 달리면 한편에 는 금수산의 기암괴석이 보이고, 아래로는 청풍호반의 물이 드리워져 있어 주변 경관이 빼어난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이다.
또한, 이거리는 청풍호 조성 후에 식재된 벚나무 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해 벚꽃길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4월 중순, 청풍문화재단지와 청풍호주변에서 청풍호반 벚꽃축제가 개최된다. 청풍 호반벚꽃 축제 행사는 전야제로 연등행사와 용신제를 올리며, 본행사로는 식전, 식후행사로 구분하여 민속경기와 체육경기가 읍.면.동대항전으로 실시하여 시민의 화합의 장이 되며, 부대행사로는 벚꽃 사진 촬영대회가 있으며 향토음식 시식코너를 개설하여 이 지방의 별미를 맛볼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된다.

* 연리지와 연리목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세월이 지나면 서로 합쳐져 한나무가 되는 현상을 연리라고 한다. 두몸이 한몸이 된다하여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과 흔히 비유하였다. 알기쉽게 '사랑나무' 라고도 부른다. 나무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지, 줄기가 이어지면 연리목이다. 연리목은 가끔 볼 수 있으나 가지가 붙은 연리지는 매우 희귀하다. 가지는 다른 나무와 맞 닿을기회가 적을 뿐만 아니라 맞닿더라도 바람에 흔들려버려 좀처럼 붙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 전설상의 새와 나무인 비익조와 연리목에서 유래된 비익이라는 새는 암수의 눈과 날개가 각각 하나이기 때문에 항상 나란히 한몸이 되어서 난다하며, 연리라는 나무는 두 그루의 나무이지만 가지가 서로연결되어 나무결이 상통한다는데서 남녀간의 깊은 정분을 뜻한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당나라 6대 황제 현종과 양귀비의 비련을 그린 장한가에서 하늘에서는 비익조(비익조)가되고 땅에서는 연리지(연리지)가 되도다라고 읊었다.

*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 (보물 546호)
이 불상은 높이가 341cm이고, 전체적인 조각 양식으로 볼 때 통일신라 말기(10세기 경)의 작품으로 보인다. 불상의 얼굴 모양은 풍만하고 자비로운 상으로 두툼한 양볼에 인중(코와 입술 사이의 우묵한 곳)이 뚜렷하고 두 귀는 양어깨까지 드리워졌다. 목에는 삼도가 새겨져 있으며, 왼손은 땅을 가르키고 있다. 옷은 통견의 (양어깨를 덮은 법의)를 걸치고 안에 속내의를 받쳐입고 있으며, 배에서 매듭을 지어 V자형으로 겹겹이 대좌에까지 내려왔다. 충주댐건설로 수몰지인 청풍면읍리에서 1983년 이곳으로 옮겨 복원하였다.

* 제천 청풍 팔영루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5호)
조선시대에 청풍부를 드나드는 관문이었던 누문이다. 아래는 문이고 위에는 누각의 형태로 되어 있다. 고종때의 부사 민치상이 청풍 8경을 노래한 팔영시로 인하여 팔영루라 불리게 되었다. 충주댐 건설로 1983년 지금 위치로 옮겨서 복원했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팔작이다. 안에는 마루를 깔고 난간을 두르고 있다. 청풍문화재단지 내에는 팔영루 외에도 금남루와 응청각, 금병헌 등 다양한 관아건축물이 있다.





정방사

정방사

- 홈페이지 : 제천문화관광 http://tour.jecheon.go.kr/base/main/view
* 금수산 자락의 고찰, 정방사 *

정방사는 금수산(1,016m) 산자락인 신선봉(845m)에서 청풍방면 도화리로 가지를 뻗어 내린 능선 상에 위치한 사찰이다. 신라 문무왕 2년(662)에 의상대사가 세운 절로, 현재는 속리산 법주사의 말사이며 기도처로 유명하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산방사로 소개되어 있으며, 의상이 도를 얻은 후 절을 짓기 위하여 지팡이를 던지자 이곳에 날아가 꽂혀서 절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사전(寺傳)에 1825년 지금의 불당을 보수했다는 기록도 있다. 주변경관이 빼어나고 특히 법당 앞에서 바라다 보이는 청풍호는 세인의 삼라만상을 모두 잊게 할 정도로 전망이 좋다. 또한 법당 지붕의 3분의 1을 뒤덮은 암벽이 있는데, 그 웅장함과 기묘한 모습은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 정방사의 구조와 볼거리 *

정방사 경내에는 법당과 요사, 현혜문 등이 있다. 1825년에 세워진 법당은 12칸, 요사는 5칸 규모의 목조 기와집이다. 현혜문은 절의 정문으로 일주문이라고도 하고,1칸 규모의 목조문이다. 법당 안에는 주존불인 높이 60cm, 어깨 너비 30cm의 관음보살상이 있으며, 불상 뒤로 후불탱화가 그려져 있다. 최근 법당 안에 신중탱화, 산신탱화, 독성탱화 등을 그려 넣었다.

* 제천 정방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

제천의 정방사 법당에 모셔져 있는 나무로 만든 관음보살좌상과 그 안에서 나온 유물들이다. 정방사는 충주호가 한 눈에 들어오는 금수산 정상 가까운 곳의 거대한 암벽 아래 자리잡은 사찰이다. 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이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정방사의 법당에 주불로 모셔져 있다. 비교적 작은 규모이나 전형적인 조선 중기 보살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얼굴은 몸에 비해 작은 편이며, 머리 정면에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는 높은 보관을 쓰고 있다. 신체는 비례가 알맞으며 옷은 오른쪽 어깨를 반달형으로 덮은 형식을 보인다. 손은 왼손을 들고 오른손을 내리고 있는데 아미타삼존불의 좌협시보살로서 만든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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