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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힐링 추천 코스

[충남 논산시][힐링 추천 코스] 백제 땅의 숨결을 느껴보다

by 어느 개발자의 블로그 2021.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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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땅의 숨결을 느껴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후 천도할 곳으로 계획했던 계룡시에서는 괴목정, 사계고택 등이 볼 만하다. 코스 여행을 하기 전 백제에 대해 충분히 사전 공부를 한다면 살아있는 백제 학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머물수록 매력있는 충청
※ 소개 정보
- 코스 총거리 : 38.30km
- 코스 총 소요시간 : 1박 2일


 




논산명재고택

논산명재고택

- 홈페이지 : http://www.nonsan.go.kr/tour/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는 대문도 담장도 없이, 마을을 향해 활짝 열린 명재고택이 있다. 뒤로는 산줄기를 병풍으로 두르고, 앞에는 장방형의 커다란 연못을 두었다. 연못 안에는 자그마한 원형 섬이 있고, 그 안에 고택과 함께 300년의 세월을 보낸 배롱나무가 멋스러운 곡선을 그리며 운치를 더한다. 연못을 지나 앞마당의 섬돌을 오르면, 기단 위의 기품 있는 사랑채가 손님을 반긴다.

* 나눔의 미덕이 지켜온 윤증 선생의 고택

명재고택은 조선 숙종(재위 1674∼1720) 때의 학자인 윤증(尹拯) 선생의 가옥으로, 그의 호를 따서 명재고택이라 불린다. 그는 임금이 무려 18번이나 벼슬을 내렸으나 일체 사양했을 만큼, 성품이 대쪽 같았다고 한다. 게다가 검소와 나눔의 미덕을 몸소 실천하고 후대에 가르쳤는데, 덕분에 은혜를 입은 사람들에 의해 동학혁명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고택이 소실될 뻔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윤증 선생의 성품을 반영하듯 고택은 다른 사대부 집안의 가옥에 비해 겉모습이 소박한 편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기품이 느껴질 뿐 아니라, 곳곳에 숨겨진 과학적 설계에 감탄하게 된다.

* 안채와 곳간채, 사랑채에서 찾은 선조들의 지혜

전면이 개방된 사랑채의 왼쪽으로 난 중문으로 들어서면, 안채가 나온다.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좌우가 대칭을 이루는 ‘ㄷ’자형 구조인데, 안채 앞에 사랑채가 있어 전체적으로는 ‘ㅁ’자형을 이룬다. 사랑채에서 안채로 넘어오는 길에는 벽이 있는데, 이곳에 과학적인 원리가 숨어 있다. 문간에 벽을 설치하여 방문객이 안채의 내부를 볼 수 없도록 차단한 것이다. 단 벽 아래에는 공간이 나 있어, 안채의 마루에서는 그 공간으로 신발을 보고 방문객을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자들의 공간인 안채를 남자들이 함부로 들여다볼 수 없게 한 지혜인 것이다. 또한, 안채 옆으로 곳간채가 있는데, 두 건물을 나란히 두지 않고, 북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도록 두었다.

여름에는 남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북쪽의 좁은 통로를 빠져나가기 때문에 그 속도가 빨라져 주변이 서늘해지고, 겨울에는 반대로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남쪽의 넓은 통로를 빠져나가 매서운 북풍을 피할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곳간채의 북쪽 끝 창고는 여름철에도 서늘해서, 이곳에 차갑게 보관해야 할 것을 둘 수 있었다. 사랑채는 큰사랑방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대청이 있고, 좌측에는 누마루가 있다. 또 그 뒤로 작은사랑방과 안사랑방, 대문간이 이어진다. 명재고택의 객실은 안채의 건넌방을 비롯한 사랑채의 사랑방 3곳이다. 누마루를 포함한 사랑채를 통째로 예약해 독채로 사용할 수도 있다. 더불어 마당 한쪽에는 초가 별채가 있고, 음향장비와 빔프로젝터가 설치된 초연당(超然堂)도 있어 단체 모임이나 공연을 할 수 있다. 현대식으로 개조한 욕실 겸 화장실도 깨끗하다. 사랑채에는 미닫이와 여닫이를 접목한 문이 있는데, 4쪽 미닫이문을 열고 다시 열면 여닫이문처럼 열리는 독특하고 과학적인 양식이다. 또한, 사랑채 누마루에 앉아 연못과 그 너머의 마을과 앞산을 내다볼 수 있다.





백제군사박물관

백제군사박물관

- 홈페이지 : http://www.nonsan.go.kr/museum/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공지사항
※ 내용 : 부분개관 (2021.09.13 ~ 별도공지 시 )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여행정보 변동사항 확인하기

백제 사비시대 동방 득안성 지역으로 천혜의 요충지이자 천년을 이어온 군사상 중요 거점지역 논산. 오천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에 나아가 장렬히 전사한 계백장군 묘소 주변 부지에 위치한 백제군사박물관은 백제와 군사라는 성격을 부여하여 전시물을 구성, 백제시대의 유물은 물론 그 시대의 군사적 모습을 전시하는 등 백제의 군사문화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백제군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는 각종 전시회 및 공연이 열려 다양한 문화예술의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도내 어린이 문화재 그림 그리기 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으며, 주말에는 박물관 야외체험장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국궁체험과 승마체험을 운영하고 있다. 2008년부터 매년 4월 백제군사박물관 옆 충장사에서 계백 장군의 충절을 기리는 제향을 지내고 있다. 또한 박물관 시설을 관리 운영하는 계백장군유적지관리사업소에서 매월 셋째 주 목요일 박물관 대학 강의가 열려 전통문화 관련 유명 강사를 섭외, 시민의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과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있다.

백제군사박물관은 백제시대 유물은 물론 그 시대의 군사적 모습을 전시하는 등 백제의 군사 문화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백제군사박물관 주변에는 계백 장군 묘와 그의 충절 정신을 기리는 충장사가 위치하고 있다. 2005년에 개관하여 관광객이 증가 추세에 있으며, 주변 탑정호와 어우러져 시민의 휴식 공간이 되고 있다.





점심식사(루체)

- 전화번호 : 041-742-7201
탑정저수지 호반에 위치하여 4계절의 변화를 카페안에서도 맘껏 감상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건축적 예술미가 뛰어난 카페로서 여유로운 건축적 공간의 미와 빛으로 충만된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이은석 경희대학교 건축과 교수가 설계하였으며, 99년 건축의 해 대전일보 선정 건축물, 충청남도가 뽑은 우수건축물로 선정되었다.





계백장군유적지

계백장군유적지

- 홈페이지 : 논산 문화관광 http://www.nonsan.go.kr/tour/
백제 말기 성충(成忠)•흥수(興首)와 더불어 백제 3충신으로 꼽히는 계백의 유허지로 최후의 결전장이던 황산벌과 가까운 곳에 있다.1966년 묘를 발견할 당시, 봉분이 반 이상 붕괴되어 내광이 노출되었으며 광벽까지 일부 파손된 채 방치되어 있었는데 부적면 사람들이 지석(支石)을 안치하고 내광회벽을 완봉한 후 봉분 둘레 47.6m, 지름 15.15m, 높이 6.5m로 복묘하였다. 1976년 5월 19일에는 봉토를 만들고 비석을 세웠다. 비석에는 ''전백제계백장군지묘(傳百濟階伯將軍之墓)''라고 씌어 있다.

* 백제의 마지막 장수, 계백 장군 *
계백(階伯 ; ?~660)은 백제의 장군이다. 554년 성왕(聖王)이 관산성(管山城)에서 전사한 뒤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되었다. 641년 의자왕(義慈王)의 즉위이래 백제는 고구려와 제휴하면서 신라를 자주 공격했다. 그러나 고립된 신라가 당나라와 협력하여 고구려.백제 두 나라를 노리면서 상황은 크게 변했다. 더욱이 의자왕의 실정으로 국내가 혼란해지고, 고구려가 연개소문의 정변 등 국내 문제로 백제와의 동맹에 소극적으로 되자 백제의 위기는 점차 현실화되었다. 결국 660년(의자왕 20) 소정방(蘇定方)과 김유신(金庾信)의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炭峴)과 백강(白江)으로 쳐들어왔다. 이에 의자왕은 계백에게 5,000명의 결사대를 주어 이를 막게 했다. 계백은 죽기를 각오하고 출전하여 1당 100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4번을 싸워 이겼으나 백제군은 결국 중과부적으로 대패하여 계백이 전사했다. 이 황산벌전투로 백제는 비운의 종말을 맞이했으며, 계백장군은 통한을 품고 이곳에 묻혀 있다.

* 백제의 마지막 장수, 계백 장군 *
계백(階伯 ; ?~660)은 백제의 장군이다. 554년 성왕(聖王)이 관산성(管山城)에서 전사한 뒤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되었다. 641년 의자왕(義慈王)의 즉위이래 백제는 고구려와 제휴하면서 신라를 자주 공격했다. 그러나 고립된 신라가 당나라와 협력하여 고구려.백제 두 나라를 노리면서 상황은 크게 변했다. 더욱이 의자왕의 실정으로 국내가 혼란해지고, 고구려가 연개소문의 정변 등 국내 문제로 백제와의 동맹에 소극적으로 되자 백제의 위기는 점차 현실화되었다. 결국 660년(의자왕 20) 소정방(蘇定方)과 김유신(金庾信)의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炭峴)과 백강(白江)으로 쳐들어왔다. 이에 의자왕은 계백에게 5,000명의 결사대를 주어 이를 막게 했다. 계백은 죽기를 각오하고 출전하여 1당 100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4번을 싸워 이겼으나 백제군은 결국 중과부적으로 대패하여 계백이 전사했다. 이 황산벌전투로 백제는 비운의 종말을 맞이했으며, 계백장군은 통한을 품고 이곳에 묻혀 있다.





관촉사

- 홈페이지 : http://gwanchoksa.modoo.at/
충남 논산시 관촉로1번길 25에 자리한 관촉사는 논산8경 중에서도 제1경으로 꼽히는 명승지다. 관촉사에는 독특한 볼거리가 많은데, 그중 으뜸은 ‘은진미륵’이라 불리는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이다. 높이 18m의 석불이 온화하고 자비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 하여 ‘백제의 미소’로 표현되곤 한다. 은진미륵 앞에 선 석등과 오층석탑, 석문 등도 눈여겨볼 것. 불경을 넣어둔 윤장대의 축을 잡고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다고 한다. 관촉사 앞마당에 서면 풍요로운 논산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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