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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가족 추천 코스

[충남 공주시][가족 추천 코스] 계룡산에서 즐기는 도예체험

by sailing ship 2021.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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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에서 즐기는 도예체험

닭볏을 쓴 용의 형상을 닮았다는 데서 유래한 계룡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만큼 곳곳에 많은 문화유산과 이야기를 품고 있다. 조선시대 계룡산을 중심으로 도읍을 건설하려 했을 정도로 예부터 유서 깊은 산이다. 갑사와 신원사, 동학사 등 유서 깊은 사찰에서 불교 문화유산을 둘러보고, 철화분청사기의 맥을 잇는 계룡산 도예촌에서 색다른 도자체험을 즐겨보자.
※ 소개 정보
- 코스 총거리 : 30km
- 코스 총 소요시간 : 5시간


 




계룡산 도예촌(계룡산도예마을)

계룡산 도예촌(계룡산도예마을)

* 철화분청사기의 맥을 잇는 계룡산도예촌 *

상신리는 마을 중간에 위치한 규모가 큰 당간지주를 통해 이곳이 통일신라에 지어졌던 구룡사지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아직도 돌담길이 잘 보존되어 있다. 상신리 주변의 반경 7km 이내에는 도자사에 있어 역사적인 의의를 갖는 일본의 도조 이삼평공의 비가 세워져 있고 조선 초에서 중기까지 오직 이곳에서만 생산된 계룡산 철화분청사기의 생산가마인 사적333호 가마터가 있다. 도예촌 형성은 전승복원을 목적으로 하여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는 도자 문화 창출지로서 발전시키기 위해 추진되었다. 1993년 5월부터 입주자가 도자기를 생산하기 시작하여 현재 12명의 도예가가 모여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계룡산 도예촌은 자연발생지가 아닌 동시 일괄적으로 입주한 전국 최초의 도예촌이 된 것이다.

계룡산도자예술촌은 5천여평 규모에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한 30대에서 40대 초반의 젊은 도예인 18명이 뜻과 힘을 모아 형성한 공동체 마을이다. 1993년 입촌한 이후 꾸준한 작품활동과 도자기 캠프를 운영하면서 점차 계룡산의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계룡산 도예촌의 작가들은 지역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철화분청사기의 전승복원에 힘쓰고 있다. 어린이들의 교육산실의 현장으로 자라나는 새싹에게 정신적인 문화와 우리지역의 자긍심을 심어주는 교육 프로그램과 기업체나 단체의 문화활동으로서의 도예문화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계룡산도예촌은 옛 것을 그대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조형개념을 도입하여 개인의 작품 및 교육활동을 하고 있다. 이곳의 주생산품은 항아리, 다기도구일체, 화병, 벽걸이, 물잔, 목걸이, 손도장찍기, 인형만들기, 필통, 촛대, 연적 등이다.





점심식사(민속촌식당)

민속촌식당

- 코스개요 : 계룡산 주변 밭에서 직접 재배한 녹두로 만든 녹두빈대떡은 고단백식품으로 담백한 맛이 일미이다.


* 문의/안내 : 041-857-5144





갑사

갑사

- 홈페이지 : http://www.gapsa.org/
http://gapsa.templestay.com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공지사항
※ 내용 : 정상운영 (템플스테이는 중단) / 별도 공지시 까지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여행정보 변동사항 확인하기

노송과 느티나무 숲이 우거진 계룡산의 서북쪽 기슭에 위치한 절이다. 공주에서 19km 떨어져 있고, 동학사에서 도보로 3시간 정도면 갈수 있는 거리에 있다.춘마곡, 추갑사라는 말이 암시해주듯이 갑사의 가을 단풍은 더없이 아름답다. 삼국시대 초기 백제 구이신왕 원년(420)에 고구려에서 온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 갑사는 계룡갑사, 갑사, 갑사사, 계룡사 등으로 불리워 왔으며, 통일신라 화엄종 십대사찰의 하나였던 명찰이다.갑사는 '하늘과 땅과 사람 가운데서 가장 으뜸간다'고 해서 갑등의 이름으로 갑사가 되었다고 전한다. 이름대로 하면 첫째가는 절인 것이다. 조선 세종 6년(1423)에 일어난 사원 통폐합에서도 제외될 만큼 일찍이 이름이 났던 절이었으며, 세조 때에는 오히려 왕실의 비호를 받아 '월인석보'를 판각하기도 하였다.1597년 정유재란시 전소되었으며,선조37년 (1604)대웅전과 진해당 중건을 시작으로 재건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절 주위에는 용문폭포, 수정봉, 천진보탑, 군자대 등 수려한 경승이 줄지어 있으며 특히 남쪽 계곡은 이른바 9곡을 이루어 절경을 이룬다.

* 대웅전
도지정유형문화재 제105호 이 건물은 갑사의 본전으로, 정유재란때 소실되었던 것을 선조 37년(1604)에 중건하였고, 고종 12년(1875년)에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위치는 원래 현재의 대적전 부근에 있었으나, 다시 세울때에 현재위치로 옮겨 지은 것으로 보인다.

* 갑사 강당
도지정유형문화재 제95호 승려들이 법문을 강론하던 건물로 계룡갑사라는 현판이 붙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가구에 기교를 부리지 않은 웅장한 조선시대 건축물이다.

* 갑사 공우탑
이 탑은 대웅전에서 대적전에 이르는 개울 건너 계곡변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본래 갑사의 부속 암자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긴 것이라 전하고 있다. 탑은 3층으로 이루어진 탑신과 기단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탑신의 1층에는 탑의 건립내용이, 2,3층에는 탑명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탑의 건립은 옥신에 새겨진 명문으로 보아 갑사 중창시에 큰 공을 소로 인해 이루어 졌던 것으로 판단된다. 명문내용은 다음과 같다. '쓰러진 탑을 일으켜 세우니 인도(人道)에 우연히 합치되었네. 세 번을 수고하고 수고했으니 그 공이 으뜸이라.'

* 갑사 동종
보물 제 478호 이 종은 갑사 해탈문을 지나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새로 지은 사모지붕의 종각안에 있다. 몸체에는 명문이 있어 조선 선조 17년(1584)에 만들었음과 갑사의 절이름도 당시는 갑사사였음을 알 수 있다. 종의 크기는 총 높이가 127cm, 입지름이 91.5cm 이다. 종의 크기는 총 높이가 일제강점기 헌납이란 명목으로 공출해 갔다가 해방후 되찾아 온 민족과 수난을 같이한 범종이다. 1584년(조선선조 17년)에 만든 종이며,신라 이래의 전통적인 범종 양식을 대체로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소리가 울려 나가는 용통이 없는 등 조선시대의 특징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용뉴(종을 매는 고리)에 새겨진 사실적인 용의 모습, 어깨부분에 붙여 놓은 9개의 윤곽(젖꼭지 모양의 장식), 연꽃 형상의 당좌(종을 쳐 울리는 부분) 등은 신라 이래 한국 범종의 전통적인 요소이다. 당좌 사이에는 비처낭 대신 지장보살이 조각되어 있다. 종의몸체에 만든 시기를 표시한 명문이 있어,우리나라 종의 변천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갑사사'라는 표기가 있어 절의 이름이 지금과 달랐던 것도 알 수 있다.

* 공주 갑사 철당간
보물 제 256호 갑사 철당간은 당을 다는 철깃대와 기둥이다. 당간은 절 앞에 세우는 깃대인데 부처나 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표시하고 사악한 것을 내쫓는 기능을 가진 당이라는 깃발을 달기 위한 깃대이며, 당간지주는 당간을 좌우에서 지탱하기 위한 버팀 기둥을 말한다. 갑사 철당간은 지름 50센티미터의 철통 24개를 이어 놓은 것으로 당간의 높이는 약 15미터이다. 그러나 1893년에 4개의 철통이 부러져 처음보다 낮아졌다.이 철당간•지주가 만들어진 시기는 갑사가 신라 의상대사가 일으킨 화엄종 10대 사찰 중 하나였다는 점과 받침돌 측면에 새겨진 안상조각으로 미루어 통일신라 시대로 추정된다. 갑사의 철당간 지주는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당간 형태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 정보]
공주 갑사 철당간 (보물 256호), 공주 갑사 승탑(보물 257호), 갑사삼신괘불탱(국보 298호), 갑사동종(보물 478호), 월인석보목판(보물 582호), 갑사석조약사여래입상(충남 유형문화재 50호), 갑사석조보살입상(충남유형문화재 51호), 갑사사적비(충남유형문화재 52호), 갑사강당(충남유형문화재 95호), 갑사대웅전(충남유형문화재 105호), 갑사대적전(충남유형문화재 106호), 갑사표충원(충청남도 문화재자료 52호), 갑사삼성각(충청남도 문화재자료53호), 갑사팔상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54호), 천진보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68호)





신원사

신원사

* 백제 시절의 고찰, 신원사 *

신원사(新元寺)는 동학사 갑사와 함께 계룡산 3대 사찰로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에 소재한다. 이 절은 백제 의자왕 11년(651)에 보덕화상이란 고승이 창건하고 그 뒤에 여러번의 중창을 거쳐 1876년 보련화상이 고쳐 짓고 1946년 만허화상이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신원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으로 전해지며 원래의 건물지는 신원사와 중악단 남쪽에 전개된 넓은 밭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은 금당지를 중심으로 신원사의 원건물지가 있을 것으로 믿어지나 조사의 결여로 자세하지 않다. 그러나 이 금당지로 믿어지는 지역을 중심으로 오층의 석탑이 세워져 있어 이곳이 본래의 사역이었음을 쉽게 알게 한다. 이와 같은 원금당지를 중심으로 석탑이 있는 이외의 현재의 신원사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대웅전의 우측에 독성각이 좌측에는 영원전이 있는데, 이들은 최근에 신축 혹은 개수가 이루어져 있다. 한편 대웅전에는 전내에아미타불을 주존불로 하여 우측에 대세지보살을 좌측에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다.

* 신원사의 유적 및 유물 *

대웅전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0호, 신라 말 고려 초기의 석탑양식인 5층석탑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1호이다. 이 밖에 대웅전에서 약 50여m 거리에 한국산악신앙의 제단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계룡산중악단'이 있는데 보물 제1293호다. 주변의 암자로는 고왕암, 등운암, 선광원, 소림원, 불이암, 금용암 등이 있다.





중악단(공주 계룡산 중악단)

중악단(공주 계룡산 중악단)

1394년(조선 태조 3년)에 창건한 신원사(新元寺)의 산신각이다. 산신은 원래 산하대지(山河大地)의 국토를 수호하는 신이며 산신제는 민족 정기의 고양과 모든 백성의 합일(合一) 및 번영을 기원하던 팔관회(八關會)를 후에 기우제, 산신제라 부르게 된 것이다.제단의 명칭은 계룡산신 제단이라는 뜻에서 계룡단(鷄龍壇)이라고 하였으나 고종 때 모향산과 지리산 산신각을 각각 상악단(上嶽壇)과 하악단(下嶽壇)이라 하고 두 산의 사이에 있는 계룡산 산신각을 중악단(中嶽壇)이라 한 것이다. 1651년(효종2년)에 철거되었다가 1879년(고종16년)에 명성황후가 다시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궁궐 양식을 그대로 축소하여 만든 건물의 안에는 산신도(山神圖)가 모셔져 있다. 산신제는 옛부터 내려온 산악신앙인 바, 현재 상악단과 하악단은 소실되었고 이 제단만 유일하게 남아있다.

* 백제 시절의 고찰, 신원사 *

신원사(新元寺)는 동학사 갑사와 함께 계룡산 3대 사찰로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에 소재한다. 이 절은 백제 의자왕 11년(651)에 보덕화상이란 고승이 창건하고 그 뒤에 여러번의 중창을 거쳐 1876년 보련화상이 고쳐 짓고 1946년 만허화상이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신원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으로 전해지며 원래의 건물지는 신원사와 중악단 남쪽에 전개된 넓은 밭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은 금당지를 중심으로 신원사의 원건물지가 있을 것으로 믿어지나 조사의 결여로 자세하지 않다. 그러나 이 금당지로 믿어지는 지역을 중심으로 오층의 석탑이 세워져 있어 이곳이 본래의 사역이었음을 쉽게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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