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 여행/가족 추천 코스

[충북 청주시][가족 추천 코스]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가 인쇄된 흥덕사지

by 어느 개발자의 블로그 2021. 9. 1.
728x170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가 인쇄된 흥덕사지

청주의 흥덕사지는 불조직지심체요절을 인쇄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1440년에 인쇄된 구텐베르크의 활자보다 63년이나 앞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 바로 흥덕사지에서 인쇄되었다. 그밖에 청주 시내 중심부에는 국보로 지정된 용두사지 철당간이 서 있는데, 당간지주와 명문이 새겨진 당간이 남아 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상당산성도 차분히 둘러볼만한 곳이다.
※ 소개 정보
- 코스 총거리 : 12.5km
- 코스 총 소요시간 : 6시간


 




흥덕사지

- 홈페이지 : http://www.cheongju.go.kr
http://www.cha.go.kr
*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의 거점, 흥덕사지 *

양변산 동남쪽 기슭의 옛 연당리 마을에 있는 흥덕사지는 1985년에 한국토지공사에서 시행하던 운천지구 택지개발사업 중 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공사를 중단하고 청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발굴된 고사지이다. 사찰의 창건 연대와 규모는 알 수 없으나,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하권의 간기에 고려 우왕 3년 (1377)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책을 인쇄하였음을 명기(明記)하고 있는데, 이것은 독일의 구텐베르크보다 78년이나 앞선 것으로 1972년 "세계도서의 해"에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된 것이다. 그러나 흥덕사지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던 중 발굴조사 결과 출토된 청동금구와 청동불발에 "서원부 흥덕사"라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어 이곳이 바로 흥덕사지임을 입증하게 된 것이다. 발굴 결과 남북 일직선 상에 중문과 탑, 금강, 강당이 배치되고 주위에 회랑이 돌아간 신라의 전통양식인 단탑가랍식(單塔伽藍式)으로 밝혀졌으며, "대중삼년(大中三年)" 명와(銘瓦)가 출토되어, 신라 문성왕 11년(849년)에 이미 이곳에 불사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발굴 완료 후 사적 제315호로 지정되어 1987년부터 1991년까지 5개년에 걸쳐 43억 원을 투입하여 40,992m²(12,400평)의 부지 위에 우리나라 인쇄문화의 발달과정을 살필 수 있는 고인쇄박물관과 정면 5칸, 측면 3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금당(金堂)과 3층 석탑(三層石塔)을 복원하고, 1992년 3월 17일에 개관하였다.

* 불조직지심체요절에 대하여 *

흥덕사지에서 인쇄된 《불조직지심체요절》은 1440년에 인쇄된 구텐베르크의 《세계심판》보다도 63년 앞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유일하게 프랑스 파리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용화사

- 홈페이지 : http://www.yonghwasa.com
* 신라시대의 고찰, 용화사

용화사(龍華寺)는 충북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 무심천변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우리나라에는 용화사라는 이름의 사찰들이 많이 있는데, 청주 무심천변의 용화사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은점선사(恩霑禪師)가 처음 지었으며, 조선인조 6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영조 18년(1752) 벽담선사(碧潭禪師)가 다시 짓고 용화사라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경내에는 보광전(普光殿)을 비롯하여 명부전, 용화전, 탐진당, 적묵당,해월루 등 목조건물과 불사리4사자법륜탑(佛舍利四獅子法輪塔), 효봉(曉峰)스님 사리탑이 있다. 불사리4사자법륜탑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드문 고대아쇼카 양식의 원주석탑(圓柱石塔)으로 진신사리 7과(顆)가 봉안되어 있다.산내암자로는 고려 태조 26년(943) 도솔선사(兜率禪師)가 세웠다는 도솔암(兜率菴), 조선숙종 7년(1681) 청안선사(淸眼禪師)가 세웠다는 관음암(觀音庵)이 있다.

* 용화사 일화

1902년 고종의 비인 순빈(淳嬪) 엄(嚴)씨가 창건하였다. 엄씨는 1901년 어느 날 일곱 미륵이 각각 무지개를 타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이에 엄씨가 절을 하니 일곱 미륵은 ‘우리는 청주의 한 늪에 있는데 어려움에 처해 있다. 절을 짓고 구해 달라’고 하였다. 이에 청주의 지주(知州) 이희복(李熙復)에게 명하여 늪 속에 빠져 있던 불상 7위를 찾아내고 상당산성(上黨山城) 안에 있던 보국사(輔國寺)를 옮겨 이 절을 지었다. 이후 영친왕(英親王) 이은(李垠)의 건강과 축복을 비는 원찰이 되었다.





점심식사(청송통닭, 성안골돌솥밥집)

- 전화번호 : 043-255-6535
40년 넘는 전통의 삼계탕, 통닭 전문점이다. 단촐한 메뉴이지만 인기가 많다.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 홈페이지 : http://www.cheongju.go.kr
http://www.cha.go.kr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41호로 지정되었다. 화강석(花崗石)으로 만든 지주는 높이 4.2m이며, 철당간 높이 12.7m, 철통 높이 0.63m, 철통지름 0.4m이다. 당간은 사찰에서 기도나 법회 등 의식이 있을 때 당(幢)을 달아 두는 기둥을 말한다. 신라시대 이후로 사찰의 건립과 동시에 많은 당간이 설치되었으나 대개 석조로 된 지주만 남아 있고 당간은 없어졌다. 철당간으로는 보물 제256호인 공주 갑사(甲寺)의 철당간과 경기유형문화재 제39호인 칠장사 당간, 이 용두사지 철당간 3개만이 남아 있다.당간의 지주는 화강석으로 양 지주가 마주 서 있고 그 사이에 원통 모양의 당간 20개를 연결시켜 철제당간을 세웠다. 양 지주는 바깥면 중앙에 세로로 도드라지게 선을 새겨 단조롭지 않도록 변화를 주었고, 지주의 맨 위쪽에는 고정 장치를 만들어 당간이 움직이지 않도록 하였다. 특히 철당간의 밑에서부터 세 번째의 철통 겉면에 철당간을 세우게 된 동기와 과정 등이 양각되어 있다. 이 명문(銘文)에 따르면 962년(고려 광종 13)에 건립되었으며, 원래는 30개의 철통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 용두사지 철당간 관련 일화 *

철당간과 관련된 일화가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청주에는 홍수가 자주 발생하여 백성들의 피해가 많았는데, 어느 점술가가 큰 돛대를 세워 놓으면 이 지역이 배의 형상이 되어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돛대 구실을 하는 당간을 세워 놓자, 이후로는 홍수가 지지 않았다. 이때부터 청주를 주성(舟城)이라 불렀다 한다.





상당산성

상당산성

- 홈페이지 : http://www.cheongju.go.kr
http://www.cha.go.kr
* 삼국시대 포곡식 석축산성, 상당산성 *

상당산성이란 명칭은 삼국시대 백제의 상당현에서 유래된 듯하다. 둘레가 4km를 넘는 거대한 포곡식 석축산성이다. 상당산성이 처음 축성된 것은 백제시대 때 토성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김유신의 셋째 아들 김서현(원정공)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전하기도 한다. 이후 조선시대 선조 29년 임진왜란 당시 개축되었다가 숙종 때 석성으로 개축하였다.1996년 현재 이 성내에는 5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읍지(邑誌)에 따르면 이 산성은 1716년(숙종 42) 고지(古址)에 의거하여 석축으로 개수하였다고 하며, 남문 등의 성문•성벽에 당시의 공사관계자들의 이름과 관직명 등이 새겨져 있다. 남문의 문루는 1977년 복원되었다.

* 상당산성의 구조 및 축조법 *

산성의 면적은 12.6ha, 성 둘레 4,400m이며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석재로 수직에 가까운 성벽을 구축하고 그 안쪽은 토사(土砂)로 쌓아올리는 내탁공법(內托工法)으로 축조하였으며 높이는 4.7m이다.동•서•남방 3개소에 성문을 두었는데, 남문은 무사석(武砂石)으로 홍예문을 만들고 그 위에 목조 문루(門樓)를 세웠다. 지금은 석축 부분만 남아 있고, 성문의 높이는 3.5m, 너비는 4.2m이다. 동문과 서문도 역시 문루가 있었으며 성문은 무사석으로 네모지게 축조하였는데 높이 2.7m, 너비 2.8m이다. 동문과 남문 부근에 1개소씩의 암문(暗門)이 있고 동남방에 수구(水口)가 있었으나 지금은 여기에 저수지가 만들어져 있다. 성내에는 동장대(東將臺)와 서장대(西將臺)의 터가 남아 있다.

천년고도의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상당산성은 청주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멀리서 보아도 상당산이 머리에 띠를 두른 듯 또렷하게 보이는 성벽은 위기 때마다 청주 사람들의 울타리가 되어준 파수꾼이다. 상당산 능성 따라 이어진 성벽은 산을 돌아가며 둘레 4.2km, 높이 4~5m의 성곽이다. 임진왜란 때에 일부 고쳤으며 숙종 42년(1716)에 네모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석성을 쌓았다. 성 안에는 5개의 연못과 3개의 사찰, 관청건물, 창고 등이 있었다. 현재 상당산성에는 공남문(남문)과 미호문(서문), 진동문(동문) 3개의 문과 2개의 암문, 치성 3곳과 수구 3개소가 있다. 조선군이 훈련하던 동장대는 1992년에 복원해 옛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성을 한바퀴 돌고 내려오면 성안에는 전통한옥마을이 조성되어 있는데 전통마을에서 맛보는 전통주와 빈대떡은 산성을 돌고난 고단함을 풀어준다.


*문화관광해설사가 상주하여 언제든지 해설을 들을 수가 있다.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16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