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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나홀로 추천 코스

[전남 고흥군][나홀로 추천 코스] 고흥의 문화유적 코스 2

by 어느 개발자의 블로그 2021.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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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의 문화유적 코스 2

전라남도 고흥의 두 번째 문화유적코스다. 잘 알려진 충무사부터 고흥만이 가진 숨은 고즈넉하고도 옛스러운 문화 유적지를 볼 수 있는 코스다. 조용히 고흥의 고사찰과 문화유적을 둘러보자
※ 소개 정보
- 코스 총거리 : 60.60km
- 코스 총 소요시간 : 1일


 




충무사

- 홈페이지 : http://tour.goheung.go.kr
충무사는 이순신 장군(1545 ∼1611년, 본관 덕수, 자는 여해)을 기리는 사당이다. 이 사당은 선조 13년(1580) 7월 이순신장군이 36세 때 이 곳 발포만호로 부임하여 선조 15년(1582년) 1월까지 모함을 받아 파면되기까지 18개월간 재임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었다. 이 충무사는 1976년 충무공 유적 고흥보전위원회가 구성되어 발포 만호진성 도제산의 남측 기슭, 성곽의 북벽 바깥에 인접한 경사지에 범 군민사업으로1976~1980년(5년간)에 걸쳐 건립하였다. 이 충무사의 전체면적은 4,335평이고 중요 시설물은 영정을 모신 사당(13평)을 비롯하여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다. 이 곳에는 충무공 보전위원회 주관으로 매년 충무공 탄신일인 4월 28일에 충무공탄신제를 거행하고 있다.





고흥 발포만호성

 - 홈페이지 : http://tour.goheung.go.kr
http://www.cha.go.kr
발포진성은 현재 고흥군 도화면 발포리 성촌마을을 중심으로 있다. 이 성은 전라좌수영 산하의 5관5포(5관 - 순천, 낙안, 보성, 광양, 고흥 / 5포 - 사도, 여도, 녹도, 발포, 방답) 중 수군만호가 다스린 수군진성으로서 성종21년(1490) 축성되어 고종 31년(1894) 폐지된 조선 초기의 성이다. 또 이 성은 선조13년(1580) 이순신장군이 36세 때 발포만호로 부임해와 18개월 동안 재임했던 인연을 맺고 있다. 발포진성에 관한 기록은 『성종실록』에 보이는데 권245, 21년 경술 9월조에『축…전라도발포성주일천삼백육십척병고십삼척(築…全羅道鉢浦城周日千三百六十尺竝高十三尺)』이라 하였으며 성종21년(1490) 적양성, 지세포성, 안골포성 등과 함게 축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성벽은 옹형에 가까운 사다리꼴 형태로 전체 둘레는 560m이고 높이는 약 4m이다. 또 서벽이 동벽보다 깊고 현재 동서남북 4벽이 거의 원상태로 남아 있으나 동벽과 남벽은 민가의 담으로 이용되고 있다.

성안의 건물지로서는 동헌과 객사, 배수로, 무기고, 동문, 서문, 남문, 망루터 등이 남아 있는데 이는 1977년 전남대학교 박물관 발굴 조사에 의해 확인된 것이다. 이 성은 여천선소 유적과 함게 임진왜란때 좌수영 산하의 수군기지로 매우 귀중한 역사적 배경을 안고 있는 곳이다. 또한 발포마을 앞에는 굴강이 남아 있으며 충무공의 애국 충정을 기리기 위하여 1976년 이충무공 유적 보존위를 결성 거군적인 유적지 복원사업을 벌여 군민의 성금과 도•군비를 투입 충무사를 건립하고 매년 4월 28일 충무공탄신 기념일에는 탄신기념 다례제를 모시고 있다.

* 규모 - 성곽일원
* 시대 - 성종 21년(1490)





금탑사

금탑사

고흥읍에서 16km 떨어진 포두면 천등산(554m)중턱에 위치한 사찰이다.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금탑사의 금탑이란 인도의 아육왕이 보탑을 건립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 그 뒤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1603년 궁현•옥순대사가 중건했다가 숙종18년(1692) 불에 타버리고 극락전만 남았다고 한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전(지방 문화재102호)을 비롯해서 명부전, 삼성각, 범종각, 요사채 등이 있고, 보물1344호인 괘불탱이 있다. 절 주위의 울창한 비자림은 천연기념물 제239호이다. 4만여평의 면적에 약 3,300여 그루의 비자나무가 금탑사와 암자주변에 무성하게 자생하고 있어 장관을 이룬다.





능가사

능가사

- 홈페이지 : http://www.templestay.com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417년 아도화상(阿道)께서 창건하여 보현사(普賢寺)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탄 뒤 조선 인조22년(1644년)에 벽천(碧川) 정현대사(正玄大師)가 중창하고 능가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벽천은 원래 90세의 나이로 지리산에서 수도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서 절을 지어 중생을 제도하라는 계시를 받고 이곳에 능가사를 신축하였다고 한다. 그 뒤 1768년(영조 44)과 1863년(철종 14)에 각각 중수하였으며, 1993년에 응진전을, 1995년에 사천왕문을 각각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5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한 보물 제1307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응진당•종각•천왕문(天王門)•요사채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350여 년 전에 나무로 만든 뒤 개금한 불상 8위와 나무로 만든 뒤 도분(塗粉)한 불상 22위, 보물로 지정된 높이 157㎝의 범종(梵鐘)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인 4.5m의 목조사천왕상(木造四天王像), 귀부(龜趺) 위에 세워진 높이 5.1m의 사적비(事蹟碑)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수도암(고흥)

- 홈페이지 : http://tour.goheung.go.kr
두원면 운대리 운곡(雲谷)의 운암산(雲嵐山) 중턱에 있는 사찰이다. 고려 공민왕 19년(1370년)화주 인종스님과 도목 응문이 건립하였으며, 그 후 몇 번의 중수와 단청이 있었다. 운암산의 산꼭대기에서 부는 바람소리를 듣고 한시간이 흘러야 산 구비 구비 돌아 이곳 도량에 바람이 온다고 한다. 바람 뿐만이 아니고 정상에서 솟은 맑은 물 또한 맥반석도 거치고 여러 약초들이 정수를 해서 이곳 수도암까지 홀러오는 물이야말로 정말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맛을 자랑하고 건강을 지키는데 영험한 약효가 확실한 생명수가 있고 좌측 산기슭에는 기이한 자궁바위가 있다. 이곳에서 자식이 귀한 사람들이 공을 드리면 정말로 자식을 얻는다는 신통한 바위 또한 수도암의 자랑거리다. 약간 중턱에 자리잡은 무루전은 수도암의 여러 전각중의 하나인데 현판에는 무루전(문화재자료 제156호)이라고 이름지어져 있으나 내부에는 나한을 모신 나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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