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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나홀로 추천 코스

[인천 강화군][나홀로 추천 코스] 강화도의 애환이 서린 교동도를 밟다

by 어느 개발자의 블로그 2021.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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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의 애환이 서린 교동도를 밟다

교동도의 역사는 꽤나 오래됐다. 고구려 때부터 신라를 거쳐 이웃의 강화도와 석모도의 간척 해안선을 가졌듯 오늘날의 교동도가 되었다.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처음으로 공자를 모신 향교여서 매해 유림들이 찾아 재를 지낸다고 한다. 교동읍성의 대룡시장을 가보는 것도 좋다. 무엇보다 해안선 경계를 위한 돈대들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하루가 될 것이다.
※ 소개 정보
- 코스 총거리 : 35.44km
- 코스 총 소요시간 : 5시간


 




교동도(강화)

교동도(강화)

- 홈페이지 : http://www.ganghwa.go.kr/
교동도는 강화군 북서쪽에 위치한 섬으로 2014년 7월 교동대교의 개통으로 더욱 편리하게 찾을 수 있는 섬이다. 고구려 시대에는 고목근현으로 신라 경덕왕때에는 교동현이라는 지명으로 개칭되었고 고려시대에는 벽란도로 가는 중국 사신들이 머물던 국제교역의 중간 기착지였다.

* 대룡시장 : 황해도 연백군에서 피난온 실향민들이 고향에 있는 시장인 연백장을 그대로 본 따서 만든 골목시장이다. 골목 곳곳에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벽화들과 조형물, 오래된 간판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교동이발관, 동산약방 등 오래된 가게 앞에서 사진 찍기, 전설의 마녀 촬영지(거북당) 구경하기, 쌀강정 등 전통 주전부리, 옛날 다방 등 볼 수 있다.

* 망향대 : 남북분단 이전에 교동도와 연백군은 같은 생활권으로 왕래가 잦았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북한의 연백군 등 황해도에서 온 피난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고, 1960년에 물길 건너 연백군이 눈앞에 잡힐듯이 보이는 이곳에 실향민들이 비를 세우고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

교동도에는 유독 집집마다 처마 밑에 제비집이 많이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제비를 두고 실향민들은 그리운 고향에서 찾아 온 반갑고 귀한 손님이라고 부른다. '평화와 통일'을 테마로 교동제비집, 평화나들길(자전거길), 교동스튜디오가 조성되어 있다. 교동제비집에서는 공연, 교육, 회의, 전시활동 등을 위한 공간을 제공한다. 스피커 등 공연 시설이 준비된 야외무대와 노트북, 카메라, 모니터 등을 갖춘 화상강좌실과 다양한 전시활동이 가능한 갤러리가 있다.

평화나들길(자전거길)은 제비집에서 시작하는 자전거 투어이다. 해안가의 철책선을 따라 조성된 회주길(30km), 넓고 푸르른 평야에 조성된 마중길로 평화나들길에서 교동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자전거길을 달리다 보면 실향민들이 고향을 바라보며 세운 망향대, 바다건너 북한이 바로 보이는 난정리 전망대, 잔잔하고 평화로운 호수가 보이는 고구리 쉼터, 바다와 교동대교가 한눈에 들어오는 해안정자 등 전망 쉼터에 잠시 들러 쉬어갈 수 있다. 교동 스튜디오에서는 옛날 교복을 입고 흑백사진을 찍을 수 있다. 시간이 멈춘 섬에서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 추억을 남겨볼 수 있다.





교동향교

교동향교

- 홈페이지 : http://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
http://www.cha.go.kr
1127년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창건 당시 화개산 북쪽에 있던 것을 조선 중기에 부사 조호신(趙虎臣)이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966년에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성전•동무(東廡)•서무(西廡)•명륜당•제기고(祭器庫)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성전 안에는 5성(五聖)•송조2현(宋朝二賢) 및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여러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무태돈대

무태돈대

- 홈페이지 : http://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
http://www.cha.go.kr
조선 숙종 5년 (1679)에 유수 윤이제가 재임시 축조한 돈대이다. 이 돈대는 조선 숙종 5년 (1679)에 유수 윤이제가 재임시 축조한 돈대이다. 해안방어를 튼튼히 하고 감시소의 역할을 담당 하였다 한다. 삼도 수영의 외곽 수비돈대로서 기능을 가진 이돈대의 규모는 둘레 210m 성곽폭은 2m 이며 해안을 항해 포좌 4문을 설치했다. 남쪽으로 망월돈대까지 3,418m, 북쪽으로 인화돈대까지 2,313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인화돈대, 광암돈대, 귀등돈대, 작성돈대 와 함께 인화보의 소관하에 있었다. 둘레 210m, 폭 2m의 석축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포좌 4문이 해안을 향해 설치되어 있었다. 해안을 향하여 길게 축조된 직사각형 형태의 돈대이다.





망양돈대

망양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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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돈대이다. 망양돈대는 높이 3m, 폭 2.5m, 둘레 120m의 원형으로 대포를 올리기 위한 포좌(砲座) 4개소와 치첩 40개소가 있고 윗부분에는 벽돌로 만든 성가퀴(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하기 위해 성 위에 덧쌓은 낮은 담으로 여장 또는 성첩이라고 함)의 흔적이 남아 있다. 주위에는 남쪽으로 3.2km 떨어진 곳에 건평돈대(인천광역시 기념물)가 있고 서쪽으로 1.3km 떨어진 곳에 삼암돈대(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가 있다. 그 밖에 당시 망양돈대와 함께 축조된 돈대로는 택지•분오리돈대(이상 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장곶•계룡•건평•건평•굴암•미루지•북일곶돈대(이상 인천광역시기념물), 망월•선수•화도•무태등대(이상 인천광역시문화재자료) 등이 있다. 특히 해안에 위치한 화도면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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