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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힐링 추천 코스

[서울 종로구][힐링 추천 코스] 도시의 고풍스러운 정취를 즐기다

by 어느 개발자의 블로그 2023.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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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고풍스러운 정취를 즐기다

예로부터 경복궁 일대인 북촌과 인사동 일대는 양반들이 거주하는 한옥이 주를 이루었다. 우아한 고전의 색깔이 물씬 풍기며 세련되게 현대화된 거리를 걸어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게다가 서울 안에 고즈넉함을 그대로 안고 있는 창경궁과 종묘를 산책하는 것은 그야말로 도시 안에서의 힐링이다.
※ 소개 정보
- 코스 총거리 : 54.13km
- 코스 일정 : 기타
- 코스 총 소요시간 : 1일
- 코스 테마 : ----지자체-----


 




인사동

인사동문화거리

- 홈페이지 : 북인사관광안내소 http://www.insainfo.or.kr
비짓서울 https://korean.visitseoul.net/index
인사동은 도심 속에서 낡지만 귀중한 전통의 물건들이 교류되는 소중한 공간이다. 인사동에는 큰 대로를 중심으로 사이사이 골목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이 미로 속에는 화랑, 전통공예점, 고미술점, 전통찻집, 전통음식점, 카페 등이 밀집되어 있다. 특히 인사동의 가게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멋으로 젊은이들은 물론 중년층에게까지 매우 인기가 많다. 그 중에서도 화랑은 인사동의 맥을 이어온 중심이다. 이 곳에는 100여 개의 화랑이 밀집되어 있는데 한국화에서 판화, 조각전까지 다양한 전시회를 감상할 수 있다. 대표적인 화랑으로는 민중미술의 중심역할을 했던 학고재, 재능있는 작가들의 터전이 되었던 가나화랑, 가나아트센터 등이 있다. 만약 인사동의 유명한 화랑만을 골라서 편하게 구경하고 싶다면 미술관 순화버스 를 이용해보자. 저렴한 가격으로 유명 화랑 10여곳을 둘러볼 수 있다.
화랑과 함께 인사동 거리를 메우고 있는 것은 바로 전통 찻집과 음식점이다. 처음에는 찾기가 힘들지만, 산책하듯이 천천히 골목골목을 둘러보면 매우 재미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명소를 꼽는다면 전통찻집 귀천이 있다. 귀천(歸天)은 고 천상병(千祥炳) 시인의 부인이 운영하는 전통찻집으로 내부는 매우 작지만 당시 시인의 책과 사진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모과차가 가장 향기가 좋아 인기인데, 지금도 가끔 유명 인사들이 다녀가는 곳이다.인사동은 매주 토/일요일마다 차 없는 거리로 지정되어 시민과 함께 하는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날은 기존 가게는 물론 거리에는 전통공연과 전시는 물론 엿장수, 사주와 궁합을 보는 할아버지가 함께 한다. 이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이들은 바로 각국에서 몰려든 외국인들이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기 위해 찾아든 외국인 관광객들은 전통가게에서 고물건을 보거나 고미술을 산다. 그리고 거리에 있는 엿을 사고 전통 파전을 먹는다. 도심에서 느끼는 전통의 멋에 빠진 외국인들의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인사동문화거리

인사동문화거리

인사동문화거리

인사동(5)

인사동(6)

인사동(9)

서울_인사동02

서울_인사동04

인사동_먹거리골목2

인사동문화거리

인사동_안내소

인사동_거리2

인사동_거리1

인사동_거리3

인사동_먹거리골목1

인사동_거리4





종묘[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홈페이지 : 종로 문화관광 http://tour.jongno.go.kr/
문화재청 종묘 http://jm.cha.go.kr
종묘는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사후에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신 사당이다. 56,500평의 경내에 종묘정전을 비롯, 별묘인 영녕전과 전사청, 어숙실, 향대청, 신당 등의 건물이 있다. 여기에 제사를 지내는 종묘대제(宗廟大祭)는 삼국 시대부터 있었던 국가적인 행사였다. 역대 임금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은 왕조시대에 빼놓을 수 없는 나라의 으뜸가는 행사이자 통치질서의 기본이었다. 종묘는 중국에서 비롯된 제도로 왕조시대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예제(禮制)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역대 왕조는 종묘를 가장 중요한 제사 대상으로 삼았고 그 건축과 조경에도 궁궐에 버금가는 정성을 쏟았다.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긴 뒤 경복궁과 동시에 세운 곳이 종묘였다. 그만큼 새 왕조에게 있어 종묘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종묘는 궁궐의 동쪽에 지어야 한다는 중국의 제도를 본따 경복궁의 동쪽에 세웠다. 그러나 종묘는 우리 현실에 맞게 수용되면서 한국 고유의 특성을 간직한 문화유산으로 자리잡았다. 단순한 구조의 재실을 길게 연결해 장엄한 엄숙미를 유감없이 발휘하였으며, 잡다한 장식을 일체 곁들이지 않은 최소한의 공간 구성으로 제사공간이 갖는 웅장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되도록 만들었다. 종묘제례는 1975년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유네스코는 1995년 12월 9일에 불국사, 석굴암, 해인사의 팔만대장경 판고와 함께 종묘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현재 종묘 정전에는 19실에 49위, 영녕전에는 16실에 34위, 정전묘정 공신당에 83위의 신위가 각각 봉안되어 있다.

*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종묘에서 베풀어지는 제사 의식을 종묘제례라 부른다. 이 의식은 조선시대에는 춘하추동의 첫 달과 그해 12월 섣달에 대제를 올렸는데, 일제 때 중단되었다가 1971년부터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전화:765-2124)’ 에서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대제를 올리고 있다. 각 제사 의례에 맞추어 음악과 무용이 곁들여져 경건한 분위기를 더욱 고양시키는데 이를 종묘제례악이라고 한다. 종묘의 뛰어난 건축미와 엄숙한 제사 의례만큼이나 장엄미가 돋보이는 음악으로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크며 동양에서도 드물게 남아있는 고전음악이다. 우리 고유의 음률을 통해 왕조의 창업과 기상을 노래하고 있으며, 모든 행사의 순서에 맞추어 춤과 음악이 조화를 이룬다. 이 종묘제례악은 국립국악원이 전수하였으며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종묘

종묘

종묘대제 2019(3)

종묘대제 2019(1)

종묘

종묘제례





북촌한옥마을

서울_종로_북촌한옥마을 (10)

- 홈페이지 : http://hanok.seoul.go.kr/front/index.do
북촌마을 방문 시 지켜야할 '에티켓'
- 단체관광객 방문시 반드시 가이드 동행
- 관광버스 불법주차 금지
- 무단 침입, 무단 촬영, 무단 투기, 노상방뇨, 소음 금지
- 마을 방문시간 준수

예로부터 북촌이라 하여 양반 동네로 알려진 이곳 주택은 모두 조선 시대의 기와집으로서 상류층의 구조 형태를 간직하며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다. 원래 이 동네에는 솟을대문이 있는 큰 집 몇 채와 30여 호의 한옥밖에 없었으나, 일제 말기와 6.25 수복 직후 지금의 상태로 늘어났다. 북촌한옥마을은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의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 서울 600년 역사와 함께해온 우리의 전통 거주 지역이다. 거대한 두 궁궐 사이에 밀접하여 전통한옥군이 위치하고 있으며, 수많은 가지 모양의 골목길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6백 년 역사도시의 풍경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전통문화체험관이나 한옥음식점 등으로 활용이 되어 간접적으로나마 조선시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예로부터 원서동, 재동, 계동, 가회동, 인사동으로 구성된 이 지역은 청계천과 종로의 윗 동네라는 이름에서 ‘북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으며, 당시로써는 왕실의 고위관직에 있거나 왕족이 거주하는 고급 주거지구로 유명하였다. 곳곳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몇 채의 한옥들은 이때의 명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여러 채의 한옥이 지붕처마를 잇대고 벽과 벽을 이웃과 함께 사용하고 있는 풍경은 우리가 잊고 살았던 따뜻한 정과 살아갈 맛을 느끼게 해준다. 북촌 지역을 걷다보면 이어진 처마선의 아름다운만큼이나 골목길의 정겨움을 느낄 수 있다.북촌한옥마을이 지속가능한 관광지가 될 수 있도록 침묵관광을 하도록 주의를 요한다.

* 허용시간 : 10:00 ~17:00(주중,토) / 일 : 골목길 쉬는 날
* 대상지역 : 북촌로 11길 일대 약 100m 구간

※ 침묵관광이란 외부 관광객들의 관광지 방문으로 인해 주민들의 생활권과 환경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큰 소리로 떠들지 않고 조용히 여행하는 관광형태를 말한다.





창경궁

창경궁_3

- 홈페이지 : http://cgg.cha.go.kr
창경궁은 세종대왕이 상왕인 태종을 모시고자 1418년에 지은 수강궁이 그 전신이다. 이후 성종 임금 대로 와서 세조의 비 정희왕후, 덕종의 비소혜왕후, 예종의 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해 명정전, 문정전, 통명전을 짓고 창경궁이라 명명했다.창경궁에는 아픈 사연이 많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적이 있고 이괄의 난이나 병자호란 때에도 화를 입었다. 숙종 때의 인현왕후와 장희빈, 영조 때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의 이야기 등이 창경궁 뜰에 묻혀있다. 사적인 창경궁은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의하여 창경원이라 격하되고 동물원으로 탈바꿈 했었으나, 일제의 잔재를 없애기 위한 온 겨레의 노력으로 1987년부터 그 옛날 본래 궁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홍화문, 명정전(조선 왕조의 정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임), 통명전, 양화당, 춘당지 등이 있으며 구름다리를 통하여 종묘와 드나들 수 있게 되어 있다.



* 주요 문화재 - 홍화문(보물), 명정문(보물), 명정전(국보), 통명전(보물), 옥천교(보물)



[창경궁 홍화문 - 보물(1963년 1월 21일 지정)]

혜화문은 도성의 동북쪽에 위치한 도성 4소문 중의 하나로서 태조 5년(1396) 9월 도성의 창축과 함께 건설되었는데 이 때의 문 이름은 홍화문(弘化門)이었다. 그러나 성종 14년(1483)에 세운 창경궁의 동문을 홍화문이라고 명명하였으므로 창경궁의 동문이름과 같은것을 피하기 위하여 중종 6년(1511)에 홍화문을 혜화문이라고 개칭하였다. 창경궁은 원래 수강궁이 있었던 곳으로, 1418년 세종이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위해 고쳐지었다.그러다가 성종조에 대왕대비와 대비를 모시기에 부족한 궁궐을 보충하기 위해 수강궁터에 새로이 창경궁을 창건하였다. 창경궁은 서울의 다른 궁궐과 같이 임진왜란 때 불탔으나, 광해군이 주요 건물들을 중창하였다. 창경궁의 명정전과 명전문 그리고 홍화문이 그 때 중창된 건물들로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창경궁은 그 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파괴되어 궁궐로써의 면모를 많이 잃었다. 1909년 창경궁은 동물원과 식물원을 개원하면서 많은 전각들이 헐려 버렸고, 1911년에는 이름마저 창경원으로 바뀌었다. 해방 후에도 창경원으로 계속 존속해 오다가 1984년부터 복원을 통해 비로소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홍화(弘化)'의 뜻은 교화, 덕화를 널리한다는 뜻으로 창경궁의 다른 전각들의 이름과 함께 서거정이 지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의 2층건물로 동쪽을 향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며, 지붕은 앞쪽에서 볼 때 사다리꼴을 한 우진각지붕이다. 지붕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 뿐만 아니라 기둥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으로 꾸몄다. 아래층은 기둥 사이마다 2짝씩 문짝을 달아 사람이 드나들게 하였으며 위층은 마루를 깔고 앞뒤 벽면에 조그만 널문들을 달아 여닫을 수 있게 만들었다. 지붕꼭대기 양끝의 조각과 부드럽게 굽어 내린 내림마루 부분의 조각상이 건물의 위엄을 한층 더 돋구고 있다. 여러차례의 수리와 단청으로 고유의 아름다움을 잃었지만, 창경궁·창덕궁 같은 건물과 함께 17세기 초반 목조건축의 연구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건물이다.



[창경궁 관천대 - 보물(1985.08.09 지정)]

서울에는 현재 조선시대에 만든 2개의 관천대가 있다. 하나는 창경궁 안에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작 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옛 북부 관상감 자리인 전 휘문고등학교 교지에 있는 것인데, 두 관천대는 구조나 크기, 제작 방법이 거의 같다. 창경궁 안에 있는 이 천문 관측소는『서운관지(書雲觀志)』에 의하면 조선 숙종 14년(1688)에 만들어졌다. 높이 3m, 가로 2.9, 세로 2.3m 정도의 화강암 석대(石臺) 위에 조선시대 기본적인 천체관측 기기의 하나인 간의를 설치하고 천체의 위치를 관측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간의는 없고 석대만 남아 있는데, 당시에는 관측소를 소간의대, 또는 첨성대라고도 불렀다. 관상감의 관원들은 이 관측대에서 하늘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끊임없이 관측하였다. 17세기의 천문 관측대로서는 비교적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귀중하며, 관상감에 세워졌던 조선 초기의 또 하나의 관천대와 함께 조선시대 천문대 양식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창경궁 풍기대]

창경궁에 있으며 조선 후기(18세기)에 제작되었다. 화강석으로 만들어졌으며 크기는 높이225cm, 하부 대석 높이 91cm, 넓이 62cm×62cm, 상부 팔각주 높이 135cm, 경 43cm이다. 「또 대궐 가운데에는 풍기가 있는데 이는 곧 옛부터 바람을 점치려는 뜻으로서, 창덕궁의 통제문 안과 경희궁의 서화문 안에 돌을 설치하고, 거기에 풍기죽(風旗竹)을 꽂아 놓았었다.」 화강석을 다듬어 만든 풍기대에는 아래에 상을 조각한 대를 놓고 그 위에 구름 무늬를 양각한 팔각주를 세운 모양으로 되어 있다. 팔각주의 맨 위의 중앙에는 깃대를 꽂는 구멍(직경 4.5cm)이 있고 그 아래 기둥 옆으로 배수 구멍이 뚫려 있다. 깃대의 길이는 확실치 않고, 깃대 끝에 좁고 긴 깃발을 매어 그것이 날리는 방향으로 풍향을 재고, 나부끼는 정도로 바람의 세기를 잴 수 있었다.



풍향기의 구조와 모양은〈동궐도(東闕圖)〉의 그림으로 알 수 있다. 이 풍기대들은 창덕궁과 경희궁에 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측우기와 수표가 강우량을 측정하는 기기인데 대해 풍기는 바람의 방향과 강도를 측정하는 풍향계이다. 풍향의 측정은 농업 기상학에서 놓칠 수 없는 중요한 관측 자료이다. 풍기에 의한 풍향의 관측은 아마도 세종 때부터는 제도화되었으리라고 생각되고, 수표의 경우와 같이 처음에는 풍기대를 절의 당간지주석처럼 만들었으리라고 추측된다. 풍향은 방향으로 측정되어 24향으로써 표시되었다. 또 풍속은 그 강도에 따라 몇 단계로 구분되었는데 아마도 강우량의 경우처럼 8단계 정도로 분류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면, 나무가 뽑힐 정도의 바람은 대풍이라 불렀고, 나무가 뽑히고 기와가 날아갈 정도의 바람은 가장 강한 것으로 폭풍이라고 하고, 대풍과 폭풍은 풍이(風異)로서 특히 기록되었다. 풍기대는 지금은 없어지고 그림으로만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풍향계대로서 그 유용한 관측기의 실증적 유물로 기상 관측기의 선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창경궁 명정전 - 국보(1985.01.08 지정)]

명정전은 창경궁의 정전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 큰 행사를 치루던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장소로도 이용하였다. 조선 성종 15년(1484)에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광해군 8년(1616)에 다시 지었다.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의 1층 건물로, 경복궁의 근정전과 창덕궁의 인정전이 2층 규모로 거대하게 지어진 것에 비해 궁궐의 정전으로서는 작은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기둥 위의 장식적인 짜임은 그 짜임새가 매우 견실하며, 그 형태가 힘차고 균형이 잡혀 있어 조선 전기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부 바닥에는 벽돌을 깔았고 왕이 앉는 의자 뒤로 해와 달, 5개의 봉우리가 그려진 일월오악도 병풍을 설치하였다. 건물 계단 앞에는 신하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24개의 품계석이 놓여 있다. 명정전 남측의 문정전과 주변 행각은 1983년부터 3년간에 걸친 복원공사로 대부분 복원하였고, 일제 때 격하되었던 창경원의 명칭을 창경궁으로 환원하였다. 창경궁의 명정전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지은 건물이지만, 조선 전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계승하고 있는 건물로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창경궁 대온실 - 등록문화재(2004.02.06 지정)]
대한제국 순종 융희3년(1909)에 준공한 온실로써, 건축 당시 한국 최대의 목조구조의 온실이었으며, 진열식물은 열대지방의 관상식물을 비롯한 희귀한 식물 등을 전시하였다. 1986년 창경궁 정비 중창공사를 계기로 우리나라 자생난을 중심으로 세계의 각종난을 진열하고 있으나 앞으로 국내 자생식물 단일온실로 특성화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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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창경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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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대온실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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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_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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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대온실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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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_야경3

창경궁_야경4

창경궁_호수야경1

창경궁_배경2





점심식사(황생가칼국수, 소선재)

서울_종로_황생가칼국수

- 전화번호 : 02-739-6334
칼국수 전문점으로 어머님 솜씨로 만든 왕만두가 일품인 곳이다. 옛날식 수육과 여름 한철 선보이는 콩국수도 별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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