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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도보 추천 코스

[경남 김해시][도보 추천 코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by sailing ship 2021.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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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조선시대 선조 25년(1592년) 4월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김해를 지키다 전사한 김득기, 송빈, 유식, 이대형 선생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고종의 명으로 1871년에 건립한 묘단이다.
※ 소개 정보
- 코스 총거리 : 3.32km


 




사충단

- 홈페이지 : http://tour.gimhae.go.kr
http://www.cha.go.kr
조선시대 선조 25년(1592년) 4월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김해를 지키다 전사한 김득기, 송빈, 유식, 이대형 선생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고종의 명으로 1871년에 건립한 묘단이다. 처음에는 동상동 873번지에 있었던 것을 김해의 도시계획으로 동상동 161번지 일원에 확장 이전하였으며, 매년 음력 4월20일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임진왜란이 끝난 후 1600년(선조 33)에 이들은 모두 가선대부(嘉善大夫) 중에서 김득기와 이대형은 이조참판, 유식과 송빈은 호조참판으로 각각 추증(追贈)되었다. 이 중 김득기의 묘는 한림면에 있고 이대형의 묘는 상동면에 있다.

송담서원은 김득기, 이대형, 송빈 삼충신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716년(숙종 42)에 진례면 신안리에 창건한 송담사가 그 효시로 그 후 여러번 훼손과 중수를 거듭하다가 1824년(순조 24)에 재건하면서 송담서원이 되었다. 1833년(순조 33) 표충사로 사액을 받았으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었다. 송담서원이 없어진 후 지방 유림들의 건의로 1871년(고종 8) 왕명을 받은 김해부사 정현석이 삼충신을 기리는 표충사를 건립하면서 유식도 함께 배향하여 사충신을 기리는 곳으로 확립되었다.서원 안에는 비각(碑閣)을 제외하고는 모두 1995년 당시 신축된 건물로 비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에 겹처마 맞배지붕을 올린 주심포집으로 비각 안에는 사충신이 추증받은 직함이 새겨진 비석이 있다.





송담서원

- 홈페이지 : http://tour.gimhae.go.kr
http://www.cha.go.kr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김해성을 지키다 장렬히 전사한 네 의병장 김득기(金得器), 송빈(宋賓), 유식(柳湜), 이대형(李大亨)의 공을 기리고 있는 묘단(廟壇) 이다. 조선 선조 25년(1592) 동래성을 함락한 왜적이 병력을 이끌고 김해성을 공격해오자, 당시 성의 주장군이었던 서례원이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게 되어 이들 네 의병장이 각기 의병들을 거느리고 성으로 들어가 적들과 죽을 힘을 다하여 싸우다 순절하였는데, 이것이 임진의병의 시작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3년 만인 1600년(선조 33) 왕은 이들의 충절을 기리고자 각자의 벼슬을 올려 주었으며, 1708년(숙종 34) 지방사림들의 도움으로 ‘송담사’와 ‘송담서원’을 세워 이들의 위패를 모셔두었다가, 1833년(순조 33) ‘표충사’라 이름 하였다. 1871년(고종 8) 단을 설치하여 ‘사충단’이라 이름 짓고 비를 세워두었으며, 매년 음력 4월 20일을 제사일로 정하여 제사를 모시고 있다. 현재는 비각 이외에는 모두 새로 지은 것들로, 비각은 앞면 1칸 • 옆면 1칸의 규모에, 옆에서 보아 사람 인(人)자의 선을 그리는 맞배지붕을 올리고 있다.





김해천문대

- 홈페이지 : 김해천문대 http://www.ghast.or.kr
* 천체와 우주에 대해 일반인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김해천문대 *

김해천문대는 지난 1998년 12월에 밀레니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천체와 우주에 대한 일반인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며, 시민들에게 낭만과 추억을 선사하기 위하여 추진되어 2002년 2월 1일에 개관하였다. 부지 면적은 1,996평, 건축 면적은 460평이다. 건물은 2층이고, 천문대의 모습은 알에서 태어난 가락국의 시조 수로왕(首露王)을 형상화해 타원형으로 만들었다. 시설은 크게 전시동•관측동•강의동으로 나뉜다. 전시동은 천체투영실과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다. 천체투영실에는 지름 8m의 반구형(半球形) 스크린에 밤하늘의 별들을 재현해주는 영사기인 천체투영기가 있다. 이곳에서는 계절별 별자리, 태양계 탐사 등 우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교육 영상물을 상영한다. 지름 20m의 둥근 철제 구조물인 전시실에는 한국의 천문 관측 역사를 입체영상으로 보여주는 매직비전, 태양계 각 행성에서 자신의 몸무게를 측정할 수 있는 중력실험장치를 비롯해 10개의 천문 교육 전시기구가 있다. 측동은 천체망원경을 통해 사람들이 직접 눈으로 별을 볼 수 있는 시설이다. 주망원경인 대형 굴절망원경•반사망원경을 비롯해 4대의 작은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다.

* 김해천문대와 김수로왕 설화 *

김해천문대의 형상은 알 모양으로 천문대의 형상이 알을 닮은 것은 기원전에 김해지역에서 형성되었던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이 알에서 태어난 것에서 유래되었다. 수로왕의 왕비인 허황옥은 인도의 아유타국 출신의 공주로 알려져 있는데, 첨단 항해장비가 없던 당시 허왕후가 배를 타고 가락국으로 올때 별을 보고 항해해 왔을 것으로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가락국의 왕자가 진례 토성 위의 상봉에 천문을 보기 위하여 첨성대를 쌓았다는 역사적인 사실이 전해오고 있는데, 지금도 그곳을 별을 보는 곳이라 하여 비비단이라고 전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로 김해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고대국가 가야는 별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었다고 볼수 있다. 천문대가 위치한 분성산 정상에 서는 김해시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 특히, 별을 관측할 수 있는 밤에 내려다본 김해시의 야경은 매우 절경이다.





김해 분산성

- 홈페이지 : 김해시 문화관광 http://tour.gimhae.go.kr
문화재청 http://www.cha.go.kr
분산성은 고려 우왕 3년(1377년) 박 위 부사가 왜구를 막기 위해 축성한 뒤 임진왜란 때 파괴되었던 것을 고종 8년(1871년) 정현석 부사가 개축한 것이다. 그러나 성의 기초 선정 방법이 삼국시대 산성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소위 테뫼식을 따르고 있음을 볼 때 최초 축성연대는 가야시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산꼭대기에 있는 평탄한 지형을 둘러서 그 주위에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룬 성벽으로, 수직에 가까운 석벽은 높이가 약 3∼4m인데 무너진 부분이 적지 않다. 이 곳에 세워진 ‘정국군박공위축성사적비(靖國君朴公葳築城事蹟碑)’에 의하면, 이 산성은 조선 초기에 박위(朴葳)가 고산성(古山城)에 의거하여 수축한 뒤 임진왜란 때 무너진 것을, 1871년(고종 8) 다시 현재의 성벽으로 고쳤다고 한다.
성기(城基)의 선정법은 삼국시대 산성의 주류를 이룬 테뫼식[鉢卷式]을 따른 점으로 미루어 그 시축(始築) 연대가 삼국시대임을 추측할 수 있다. 김해시내, 김해평야와 낙동강, 그리고 남해바다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분산의 정상부에 띠를 두르듯이 돌로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현재는 시내 쪽 경사면에 약 900m 가량의 성벽이 남아 있고, 성안에는 남북의 2개 문지와 서편의 암문, 우물지 등 몇 개의 건물터도 남아있다. 성곽의 길이는 총 929m, 평균 폭은 약 8m이다.
산성 안에는 해은사가 있다. 해은사는 가락국의 허왕후가 바다에서 왔던 것을 기리는 뜻에서 세워졌다고 하며, 조선시대에 그려진 수로왕과 허왕후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곳에 승병이 주둔 하였다고 전한다.

* 분산성의 또다른 이름 만장대 *
김해시민들에게는 "만장대"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데, 만장대는 조선시대에 대원군이 왜적을 물리치는 전진기지로 '만길이나 되는 높은 대"라는 칭호를 내렸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1999년에 복원된 봉수대 뒷편의 바위에는 만장대라 쓴 대원군의 친필과 동장이 새겨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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