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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가족 추천 코스

[충북 충주시][가족 추천 코스] 시간은 강물 따라 흐르고 이야기만 남았네 목계나루의 자취

by 어느 개발자의 블로그 2021.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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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강물 따라 흐르고 이야기만 남았네 목계나루의 자취

배 수십 척이 오가고,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의 목소리가 강물 위로 번지던 곳. 목계 나루터의 자취를 찾아보고 민속공예거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 장병산 자락의 고즈넉함 속에 숨 쉬는 고찰 신흥사와 청룡사지의 자취를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출처]충주여행 30선 중에서
※ 소개 정보
- 코스 총거리 : 40.84km
- 코스 총 소요시간 : 6시간


 




봉황경(능암리섬)

봉황경(능암리섬)

- 홈페이지 : http://www.riverguide.go.kr
많은 수생 동식물이 불러들이는 철새들로 인해 능암리섬은 자연학습장과 산책로로 좋은 곳이다. 남한강 하중도는 다양한 종류의 철새가 서식하고 있으며 특히 원앙, 큰고니, 말똥가리, 흰목물떼새 등 법적보호종도 자주 목격된다. 유독 철새들이 많고 물억새, 갈대군락지가 장관을 이루고 있어 많은 사진작가들이 이곳을 찾는다. 수변산책로를 통해 야생조류원을 볼 수 있고 전망관찰대에서는 갈대숲의 전경과 송림, 철새들의 비상을 감상할 수 있다. 수변잔디광장을 중심으로 자전거도로, 제방길, 청소년 야영장이 있으며, 목계나루터 재현 및 체험장, 수변광장과 관찰데크, 야생초화원 등이 있다.





충주 민속공예거리

충주 민속공예거리

- 홈페이지 : www.chungbuknadri.net
https://www.chungju.go.kr/tour/
* 자연발생적 공예거리, 충주 민속공예거리 *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봉황리의 목계~감곡 구간 38번 구(舊) 국도변에 형성되어 있는 거리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고미술 상인들과 공예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여 약 1km에 이르는 민속공예거리가 조성되었다. 충주 민속공예거리는 자연발생적으로 조성된 민속공예 및 실내장식 상품 제작, 판매 거리로서 50여 곳 정도의 전시장과 판매소를 통하여 다양한 종류의 작품들을 관람하고 구입할 수 있다.가금면 봉황리를 통과하는 38번 국도변 약 5km 좌우와 엄정면 목계리 소재지 주변에 자연발생된 옛 유물(골동품)과 근세의 생활용품 및 나무뿌리조각, 수석 등을 전시, 판매한다. 수저, 등잔, 다식판, 탈곡기 등 애환이 어린 물품에서부터 석등, 불상, 장승에 이르기까지 만물상 거리를 이루어 있어 지나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주변에는 생활시설이나 숙박시설 등이 없어서 여행 중 잠시 방문하여 작품을 감상하거나 구입하기에 적합할 것으로 판단된다.

* 충주 민속공예거리에서 볼 수 있는 것은? *

충주 민속공예거리에서는 다양한 공예품을 만날 수 있다. 우선 민속공예로는 옛가구, 절구, 항아리, 하르방 등을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자연목을 사용한 작품, 조각작품 등의 목제제품과 수석, 석탑, 석등, 조각작품 등의 석제제품도 만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충주의 자랑 철제제품을 들 수 있는데, 철제제품으로는 청동상, 조각, 각종 생활용품 기타 다양한 실내장식, 조각, 옛 유물의 전시와 판매를 겸하고 있다.





점심식사(송풍재)

- 전화번호 : 043-853-9245
※ 영업시간 12:00 ~ 21:00

송풍재는 입구에서부터 한국 전통의 미가 담겨 있는 한옥 건물의 두부 전문 음식점이다. 한지로 만들어진 전등과 창문이 아늑한 느낌을 주어 옛 멋을 더욱 느낄 수 있다. 밖으로는 넓은 자체 주차장이 있어 음식점 이용이 편리하다. 콩 요리 전문점으로써 두부에 사용되는 콩은 직접 농사지은 콩으로 자체 가공사업장에서 두부를 만들기 때문에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별미로 맛볼 수 있는 오리요리 또한 국내산 오리만을 재료로 사용한다.




신흥사

* 장병산의 기운을 받는 사찰, 신흥사 *

신흥사(新興寺)는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 산 3번지 장병산(長屛山)자락에 자리한 사찰이다. 1890년(조선 고종 27) 오영근(吳永根)이 창건하였다. 1905년에는 이영월(李泳月)이 꿈을 꾸고 경내 마당에서 금종과 운판을 발굴하고는 이 중 금종을 관청에 보고하고 보상금을 받아서 1924년 법당을 중창한 뒤 절 이름을 신흥사로 바꾸었다. 1952년 중창하였으며, 1976년 삼성각과 종각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1980년까지는 대한불교천태종, 1981년부터는 한국불교법화종에 속하였으나 1998년 해동종으로 소속을 바꿨다. 건물로는 대웅보전과 삼성각•용신각•범종각•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924년 세워진 것이다. 내부에 아미타불과 석가모니불•관세음보살의 삼존불이 있고 불상 뒤로는 극락후불탱화와 지장탱화•십일면관음탱화 등이 모셔져 있다. 불상 주위에는 십육나한상이 놓여 있는데, 이 중 4구는 절 부근에서 출토된 것이다. 높이는 51cm로 머리에 두건을 쓰고 손은 합장을 한 모습이다. 고려 때 유물로 보존 상태가 좋으나 물감으로 덧칠하여 본래의 색상은 알 수 없다. 그밖에 팔각원당형부도 재료와 고려청자 1점이 발굴된 바 있다. 이들 유물은 1995년에 충주박물관으로 이전되어 보관중이다.

* 신흥사의 창건 설화 *

신흥사를 창건한 오영근은 약초를 캐러 갔다가 석간수(石澗水)를 발견했는데, 그 물을 마시고 소원을 빌었더니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후 석간수는 영천(靈泉)으로 이름이 났으며 오영근이 근처에 초가 2칸을 마련하여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청룡사지

청룡사지

- 홈페이지 : https://www.chungju.go.kr/tour/
고려말 청계산 중턱에 작은 암자가 있던 것을 이태조의 사부 보각국사가 은거하므로, 태조가 대사찰을 세우도록 했다 한다. 지금은 폐허가 되고 부근에는 보각국사의 부도탑인 정혜원융탑과 석등, 정혜원융탑비 등이 남아 있다. 정혜원융탑은 보각국사의 사리를 모셔놓은 탑으로 국사가 세상을 떠나자, 태조가 왕명으로 탑을 짓게 하여 권근이 비문을 짓고 탑명을 정혜원융(定慧圓融)이라 하였다. 무너져 있던 것을 1968년 복원하였으며, 석등은 보각국사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시대 석등의 기본형인 평면정사각형이다. 아래부분에 한마리 사자의 모습이 매우 힘차게 표현되어 있어 사자석등이라고 부른다. 경기도 양주의 회암사지 쌍사자석등과 더불어 조선시대 사자석등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정혜원융탑비는 보각국사를 기리기 위한 비로 고려 우왕 9년에 국사가 되어 73세에 입적한 사실과 보각국사의 덕과 지혜를 기린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비 윗부분의 장식물인 개석이 없는 대신에 비신 양 끝 부분의 모서리를 깍은 귀접이 양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청룡사지에 전하는 전설 *

소태면 오량리에 청계산이 있는데 명산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조 말엽 민씨네가 득세를 할 때 청룡사 윗자리에 명당이 있다 하여 민씨네가 이곳으로 이장을 하였다. 그런데 풍수설에 따르면 명당자리 부근에 절이 있으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을 없애기로 했다. 당시 이곳에는 허씨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의 세력이 컸고 사찰의 운영권도 그들이 쥐고 있었기 때문에 절을 없애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민씨 가에서는 비밀리에 사람을 사서 절에다 불을 지르기에 이르렀다. 그 때 이 절 지붕에서 살 던 큰 뱀이 내려와 불을 지른 사람의 앞을 가로 막으니 한 사람은 놀라 자빠져 피를 토하며 죽고, 또 한 사람은 발이 떨어지지 않아 불에 타 죽고 말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절 위에 쓴 민씨 산소에 벌초를 하러 오는 사람까지도 오기만하면 생명을 잃고 갔기에 산소도 묵모이로 옮겼다고 한다.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
- 보물 제658호 (1979년 05월 22일 지정)
청룡사 옛 터에 남아 있는 비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활약한 승려 보각국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 돌이 서 있다. 머릿돌을 따로 얹지 않고 몸돌 양 귀퉁이를 깎아서 마무리했다. 조선 태조 3년(1394) 문인선사 희달이 왕의 명을 받아 세운 것으로 권근이 비문을 짓고 승려 천택이 글씨를 썼다. 현재 다시 새로 창건한 청룡사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보각국사탑과 그 앞의 사자석이 함께 있다.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
- 보물 제656호(1979년 05월 22일 지정)
청룡사지는 충주시 소태면에 있는 옛 절터이다. 옛터에는 석등과 함께 보각국사의 사리탑과 탑비만이 남아있다. 이 석등은 보각국사의 명복을 빌어 주기 위해 그의 사리탑 앞에 세워진 것이다.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아래에 이를 받쳐주는 3단의 받침이 있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3단의 받침 가운데 아래받침돌 아래에 사자 조각이 있어서 사자석등이라 부른다. 절터에서 석등을 사리탑, 탑비와 나란히 세운 것은 조선시대의 배치방식이다. 탑비의 기록으로 볼 때 이 석등은 조선 전기인 태조 1년(1392)부터 그 이듬해인 1393년에 걸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바로 옆에 새로운 청룡사가 세워져서 현재 불사가 진행 중이다.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 국보 제197호(1979년 5월 22일 지정)
* 조선시대 전기 조형미술의 표본 *
청계산 중턱의 청룡사에 자리한 부도로, 보각국사의 사리를 모셔놓았다. 보각국사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12세에 어머니의 권유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이후 불교의 경전을 두루 연구하여 높은 명성을 떨치었다. 특히 계율을 굳게 지키고 도를 지킴에 조심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조선 태조 원년(1392)에 73세의 나이로 목숨을 다하자, 왕은 '보각'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이름을 ‘정혜원륭’이라 내리어 탑을 세우도록 하였다.

* 보각국사정혜원륭탑의 구성과 의의 *

탑은 전체가 8각으로 조성되었는데, 바닥돌 위에 아래•가운데•윗받침돌을 얹어 기단(基壇)을 마련하고 그 위로 탑몸돌과 지붕돌을 올려 탑신(塔身)을 완성하였다. 기단은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8각으로,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를 새겼다. 가운데돌에는 사자상과 구름에 휩싸인 용의 모습을 교대로 새겼다. 탑신의 몸돌은 각 면마다 무기를 들고 서 있는 신장상(神將像)을 정교하게 새겨 놓았으며, 그 사이마다 새겨진 기둥에는 위로 날아오르는 이무기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표현하였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에서 높이 들려있는데 마치 목조건축의 아름다운 지붕 곡선이 살아난 듯 하다.태조 3년(1394)에 완성을 보게 된 이 부도는 양식상 종모양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8각의 평면을 이루는 형식으로 건립된 몇 되지 않는 부도 가운데 하나로, 조선시대 전기 조형미술의 표본이 되는 귀중한 유물이다. 또한 탑 가득히 새겨진 조각과 둥글게 부풀린 외형이 어우러져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탑신의 기둥과 지붕의 곡선, 그리고 지붕 귀퉁이의 용머리조각 등에서 목조건축의 양식을 엿볼 수 있다.

[충주 청룡사지 석종형승탑]
- 충청북도문화재자료 제54호(2006년 03월 03일 지정)
충주시 소태면의 청룡사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석종형 부도이다. 조선시대에 유행한 전형적인 종 모양으로 지붕돌, 팔각원당형 부도재 등의 유물과 함께 보호각 안에 놓여 있다. 전체 높이가 1.98m로 비교적 대형 크기에 속한다. 탑의 몸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정사각형의 지댓돌 위에 각진 모양의 굄대가 새겨진 밑받침돌을 2단 놓고 탑의 몸을 올렸다. 탑의 몸 앞면 가운데 부분에는 문자를 새긴 흔적이 있다. 마모가 심해 육안으로는 쓰인 글씨를 쉽게 알 수 없으나 ‘적운당사리탑(跡雲堂舍利塔)’이라 쓰인 것으로 보인다. 근처에 근래에 지은 청룡사가 있으며 많은 불교문화재가 곳곳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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