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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가족 추천 코스

[경기 화성시] [가족 추천 코스] 향토유적 따라 가을 속으로

by 어느 개발자의 블로그 2021.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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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유적 따라 가을 속으로

융건릉을 빠져 나오면 1.7km지점에 숲으로 둘러싸인 용주사가 있다. 행정구역상으론 태안읍 송산리지만 융건릉을 모신 화산 뒤쪽인 동쪽기슭이다.
※ 소개 정보
- 코스 총거리 : 35.57km


 




용주사

- 홈페이지 : http://www.yongjoosa.or.kr
융건릉을 빠져 나오면 1.7km지점에 숲으로 둘러싸인 용주사가 있다. 행정구역상으론 태안읍 송산리지만 융건릉을 모신 화산 뒤쪽인 동쪽기슭이다. 이곳엔 본디 신라 문성왕 16년(854)에 염거화상이 창건한 갈양사가 있었다. 고려 광종21년(970)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수륙재를 개설하는 등 청정하고 이름 높은 도량이었으나 병자호란때 소실된 후 폐사가 되었으나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로 삼았고 낙성식날 밤 정조가 꿈을 꾸니 용(龍)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여 절 이름을 용주사(龍珠寺)라 했다고 전한다. 정조는 용주사를 중창할 때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목판에 새겨 보존하도록 명을 내리고 당대 제일의 화가 김홍도에게 맡겨 아름답게 꾸미도록 했다. 50여 목판과 함께 대웅전 옆 잔디밭에는 10개항에 이르는 부모은중경을 새긴 탑비가 우뚝 서 있다.대웅전 후불탱화는 김홍도의 지휘로 그려진 걸작이고 정조대왕이 심었다는 대웅전 앞 회양목은 수령이 무려 200여년이 넘는 천연기념물 제264호이다. 범종각의 동종도 상원사 동종, 국립경주박물관의 에밀레종 등과 더불어 손꼽히는 걸작이고
역시 국보 제120호이다.

* 주요문화재

1) 용주사 범종(국보 제120호)
2) 회양나무(천연기념물 제264호)
3) 금동향로(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호)
4) 청동향로(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호)
5) 상량문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호)
6) 전적수사본(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4호)
7) 병풍(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호)
8) 대웅전후불탱화(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호)
9) 불설부모은중경판(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호)





융건릉

- 홈페이지 : http://royaltombs.cha.go.kr/html/HtmlPage.do?pg=/new/html/portal_01_13_01.jsp&mn=RT_01_13
조선 제 22대 왕 정조는 효심이 각별했던 임금이다. 왕위에 있는 동안 보여준 지극한 효심은 백성에게까지 추앙을 받았다. 그는 비명에 숨져간 부친 사도세자의 묘를 옮겨 묘호를 바로 세우는 등 선친의 원혼을 위로하는 한편 1년에도 수차례 능 참배길에 나섰고 가식없는 효심으로 백성을 감복시켰다. 정조는 사후에도 부친의 능이 있는 지금의 화성시 화산기슭에 묻혔다. 수원시 교외 약 8km쯤에 자리잡은 융건릉(隆健陵 사적206호)은 부친 사도세자(장헌세자) 장조와 그의 비 혜경궁 홍씨(헌경왕후)를 모신 융릉(隆陵)과 정조대왕과 그의 비 효의왕후 김씨를 모신 건릉(健陵)을 말한다. 융릉은 화산의 서남쪽, 건릉은 서북쪽 기슭에 들어 있어 모두 서향이다.

그래서 해질녘의 분위기가 더욱 그윽하고 깊은 느낌을 안겨 준다. 이들 능 입구에는 재실이 있고, 능 주변은 하늘을 가린 짙은 송림과 상수리 나무숲이 이루어져 있어 역사교육과 숲길 산책으로 권장할 만한 곳이다. 능을 다 돌아보는 데는 숲속 오솔길로 1시간 정도 걸린다. 융건릉과 함께 들러 보아야 할 곳으로 기복사인 용주사가 있다. 정조는 능에서 1.5km인 용주사를 증축할 때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목판에 새겨 보존하도록 명을 내리고 당대 제일의 화가 김홍도에게 맡겨 아름답게 꾸미도록 했다. 50여 목판과 함께 대웅전 옆 잔디밭에는 10개 항에 이르는 부모은중경을 새긴 탑비가 우뚝 서 있다. 대웅전 후불탱화는 김홍도의 지휘로 그려진 걸작이고 정조대왕이 심었다는 대웅전앞 회양목은 수령이 무려 200여년이 넘는 천연기념물 제264호다. 범종각의 동종도 상원사 동종, 국립 경주박물관의 에밀레종 등과 더불어 손꼽히는 걸작이고 역시 국보 제 120호이다.

* 융릉

융릉은 조선 제22대 정조의 아버지인 장조(1735~1762)와 그의 비인 헌경왕후(獻敬王后)(1735~1815) 홍씨가 묻힌 곳이다. 1749년(영조 25년) 부왕을 대신하여 서정을 하면서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노론들과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숙의 문씨 등의 무고에 의해 영조의 미움을 사 영조 38년 (1762) 뒤주 속에 갇혀 세상을 떠났다. 그후 영조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로 사도라는 시호를 내렸고, 묘호를 수은묘라 하였다. 그의 아들 정조가 즉위하자, 장헌으로 추존되었다가, 1899년 (광무 3년)에 다시 장조로 추존되었다. 장조의 무덤은 경기도 양주 배봉산 (현재의 동대문구 휘경동)아래에 있었는데 정조가 수원화산으로 옮기면서 현륭원이라고 하였고, 장조로 추존된 뒤 능호를 융릉으로 높였다. 헌경왕후는 영의정 홍봉한의 딸로 1744년(영조 20년)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장조가 세상을 떠난 뒤 혜빈 정조 즉위년에 궁호를 혜경으로 올렸고, 뒤에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면서 헌경황후에 추존되었다.

남편의 참사를 중심으로 자신의 한 많은 일생을 자서전적인 사소설체로 적은 [한중록]을 남겨 궁중문학의 효시가되었다. 웅릉은 합장릉으로 동,서, 북 3면에 곡장을 두르고, 봉분은 모란과 연화문을 새긴 병풍석을 둘렀는데 난간석은 생략되었다. 그러나 방위 표시를 위해, 병풍석 위에 꽃 봉오리 모양의 인석에 문자를 새겨 넣었다. 봉분 바깥으로 석호와 석양을 각각 2기씩 배치하여 봉분을 호위하고 있다. 봉분 앞에는 상석, 망주석과 장명등, 문인석과 무인석, 석마들을 배치하였는데, 추존 왕릉임에도 무인석까지 배치한 점이 중요하다. 또한 제향을 지내는 정자모양을 한 정자각, 정자각 뒤로 제향 후 축문을 태워 묻는 사각형의 석함인 예감, 비를 인치하는 비각, 제물을 준비하는 수라간, 제향후 축문을 태워 바라보는 곳인 망료위 등의 부속 시설이 있다. 신문, 정자각까지는 두 사람이 걸을 수있는 폭의 신도와 어도로 구분하였고, 정자각 그 아랫단 왼편까지 넓게 박석을 깔았다. 융릉은 누가 보아도 능 조영에 정성을 들인 정조의 효심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 건릉

건릉은 정조(1776-1800 : 재위, 1752-1800)와 효의왕후(1753-1821) 김씨가 묻힌 곳이다. 정조는 장조의 아들로 1759년 (영조 35년)에 세손에 책봉되었다. 1762년 장헌세자가 비극의 죽음을 당하자 영조의 맏아들 효장 세자(추존)의 후사가 되어 왕통을 이었다. 1775년(영조 51년) 연로한 영조를 대신하여 대리청정하였고, 영조가 승하하자 1776년에 왕위에 올랐다. 정조는 아버지인 장헌 세자가 당쟁에 희생되었기에 왕권을 강화하고 체제를 재정비하기 위하여 영조 이래의 기본 정책인 탕평책을 계승하였다. 왕실의 도서관인 규장각을 설치하였고 새로운 인물들을 대거 등용하여 새로운 혁신정치를 펼쳤다. 또한 임진자, 정유자 등의 새로운 활자를 만들었으며, [속오례의][국조보감][대전화통][증보동국문헌비고] 등의 많은 서적을 편찬, 간행하였다. 재위기간은 정조의 학문적 소양에 터전한 적극적인 문화 정책의 추진과 선진문화인 중국의 건륭 문화의 영향 등으로 문화적인 황금시대를 이루어 조선후기 문예부흥기를 이루었다.

효의 왕후는 청원부원군 김시묵의 딸로 1762년 (영조 38년) 세손빈으로 책봉 되었으며, 정조가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다. 1821년 (순조 21년) 창경궁에서 승하하였다. 건릉은 합장릉으로 동,서,북 삼면의 곡장에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다른 상설내용은 융릉의 예를 따랐다. 석물은 난간석 바깥으로 석호와 석양을 각각 4기씩 배치하여 봉분을 호위하고 있다. 봉분 앞에는 상석, 망주석과 장명등, 문인석과 무인석, 석마들을 배치 하였다. 또한 제향을 지내는 정자 모양을 한 정자각, 정자각 뒤로 제향 후, 축문을 태워 묻는 사각형의 석함인 예감, 비를 안치하는 비각, 제물을 준비하는 수라간, 제향 후 축문을 태워 바라보는 곳인 망료위 등의 부속 시설이 있다. 신문, 홍전문에서 정자각까지는 신도와 어도로 구분 하였고, 정자각 그 아랫단 왼편까지 넓게 박석을 깔았다. 신문 밖으로 능의 수호, 관리를 위한 재실이 있다.

* 장조 (사도세자)

1) 조선조 21대 영조의 둘째 아들로 이름이 선으로 영빈 이씨의 소생이며 영조 11년(1735)1월 21일 창경궁에서 탄생
2) 영조 12년(1736년) 2세에 왕세자로 책봉되고 영조 25년(1749년)에 수렴청정
3) 영조 38년(1762년)윤 5월 21일 뒤주에 갇혀 28세로 승하
4) 시호를 사도라 하고 7월 23일 경기도 양주군 남면 중량포(현 동대문구 답십리) 배봉산에 장사 지내여 원호를 영우원이라 하였다가 27년 후인 정조 13년(1789년) 10월 7일 이곳 화산으로 천장하고 원호를 현륭원이라고 고침
5) 광무 3년 10월에 왕으로 추존하여 묘호를 장종이라 하고, 능호를 융릉이라 하였다가 같은해 11월에 시호를 의황제라 추존하고 묘호를 장조로 고침

* 헌경왕후 (혜경궁 홍씨)
1) 풍산 홍씨로 영의정 홍봉한의 딸로 영조 11년 (1735년) 6월 18일 탄생
2) 영조 20년 (1744년) 10세때 세자빈으로 책봉
3) 순조 15년 (1815년) 12월 15일 81세로 승하하여 3월 3일 현륭원에 합장
4) 정조 즉위해 (1776년)에 궁호를 혜경궁이라 하고 광무 3년 (1899년) 경의왕후로 추존하고 같은 해 11월에 황후로 추존함

* 정조 (조선 22대 임금)

1) 정조는 장조(사도세자)의 아들로 재위 24년(1776-1800년)동안 탕평정치를 실시하고 선정을 베풀고 규장각을 두어 학문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

2) 장조(사도세자)의 둘째 아들로 이름이 산으로 어머니는 현경의황후(혜경궁 홍씨)이며 영조 28년(1752년) 9월 22일 탄생
3) 영조 35년(1759년)왕세손으로 책봉되고 영조 51년 (1775년)에 수렴청정하고 이듬해(1776년) 3월 10일 경희궁에서 즉위
4) 정조 24년(1800년) 6월 28일창경궁에서 49세로 승하
5) 묘호를 정종이라 하고 11월 6일 융릉 동쪽 2째 능선에 장례하였다가 22년 후인 순조21년(1821년) 9월 13일 현 위치로 천장
6) 광무 3년 11월 선 황제로 추존하고 묘 호를 정조로 고침

* 효의선황후
1) 청풍김씨 청원 부원군 김시묵의 딸이며 영조 29년 (1753년) 12월 13일 탄생
2) 영조 38년 (1762년) 2월에 왕세손 빈으로 책봉됐다가 정조가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
3) 순조 21년 (1821년) 3월 9일 창경궁에서 69세로 승하하여 9월 13일 건릉에 합장
4) 광무 3년 11월 효의선왕후로 추존됨





또나따목장

※ 목장 내부사정으로 체험 일시중단

또나따 목장은 최첨단 착유시스템인 로봇착유기를 국내최초로 도입하였으며, 착유과정을 자동화함으로써 위생적인 우유를 생산하고있다. 젖소들이 원할때마다 스스로 착유할 수 있기 때문에, 착유로 인해 겪는 심한 스트레스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이밖에도 젖소의 행동습관을 파악하여 여러가지 스트레스 요소들을 제거하는 데 만전을 기하고 있다. 따라서 스트레스가 적은 젖소로부터 건강한 우유를 생산하고 있다.또나따목장의 최첨단 로봇착유시스템을 이용하여 밤12시부터 새벽4시까지 착유한 우유는 일반 우유보다 수면유도 성분이 3~4배 가량 많이 함유된 우유이며, 물량이 제한되어 있는 우유이다. 또한 직접 가공한 우유로 만들 예정인 시유요구르트와 스트링치즈는 또나따목장의 새로운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안곡서원

- 홈페이지 : http://tour.hscity.go.kr
http://www.cha.go.kr
1668년(현종 9)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박세희(朴世熹)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70년에 박세훈(朴世勳), 1700년(숙종 26)에 홍섬(洪暹)을 추가 배향하였으며, 1721년(경종 1)에 ‘안곡(安谷)’이라고 사액되어 1729년(영조 5) 사액이 취소되었다가 1740년(영조 16) 회복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왔다.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위패는 서원부근에 매안(埋安)하였다. 그 뒤 지방 유림과 문중의 협력으로 1976년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6칸의 사우(祠宇), 신문(神門), 동서 협문(夾門)과 4칸의 강당 등이 있으며, 사우에는 박세희를 주벽(主壁)으로 박세훈과 홍섬의 위패가 배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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