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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가족 추천 코스

[경북 상주시][가족 추천 코스] 호국의 성지에서 애국정신을 새기다

by 어느 개발자의 블로그 2021.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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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의 성지에서 애국정신을 새기다

동학의 남접주(동학의 교단 조직인 접의 책임자)인 김주희 선생이 교세 확장을 위하여 1924년에 건립한 곳으로, 1925년 이곳을 본거지로 상주, 문경, 예천 등 경북 북부지방을 중심으로 일제의 눈을 피해 교세 부흥을 도모하였던 곳이다.
※ 소개 정보
- 코스 총거리 : 33.97km


 




상주동학교당

- 홈페이지 : http://www.cha.go.kr
* 김주희 선생이 동학부흥을 도모하던 곳, 상주동학교당 *

동학의 남접주(동학의 교단 조직인 접의 책임자)인 김주희 선생이 교세 확장을 위하여 1924년에 건립한 곳으로, 1925년 이곳을 본거지로 상주, 문경, 예천 등 경북 북부지방을 중심으로 일제의 눈을 피해 교세 부흥을 도모하였던 곳이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동학과 관련된 건물과 유물을 보존하고 있으며, 건물 형식은 태극체(음양체)로 지은 초가집이다. 현재 지방문화재 민속자료 제 120호로 지정되어 있다. 건물 배치 유형은 튼 ‘ㅁ’자형으로 이것을 태극체(太極體) 또는 음양체(陰陽體)라고 한다. 건물에 쓰인 목재는 당시 교세의 영세성을 입증하듯 여러 곳에서 헌집을 헐어 세운 것으로 보인다. 건립 당시에는 모든 가옥이 초가지붕이었으나 후에 천연 석재로 지붕을 바꾸었고, 1987년에는 서재만을 원형인 초가지붕으로 개수했다. 서재는 남녀 교우가 거처하던 집으로 정면 4칸 반, 측면 2칸의 겹집이다. 여교우실과 남교우실의 맞은편에는 각각 정면 2칸, 측면 반 칸의 뒷마루가 90도 틀어져서 시설되어 있다. 남재는 정면 6칸, 측면 1칸 반의 건물로 주로 부교주와 타지에서 온 남교도들이 기거했다.

* 인간의 주체성과 만인평등사상을 내세운 자생
민족종교, 동학 *

동학은 조선시대 봉건적인 신분제도에 반기를 들고 인간의 주체성과 만인평등사상을 내세운 우리나라의 자생 민족종교로 주 사상은 인내천(人乃天)이었다. 창시자는 수운(水雲) 최제우(崔濟遇) 선생이며 2대교주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 선생으로 이어진다.  교세 확장에 따라 각 지방에 남•북접 접소(接所)를 두고 조직화하였는데, 불안을 느낀 조선조정에서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죄로 탄압을 하자, 이에 대항하여 탐관오리의 숙청과 보국안민을 내세워 전봉준(全奉準)이 주도한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주체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 조선 정부의 요청에 따른 일본군의 개입으로, 우금치 싸움에서 패한 후에는 지하에서 숨어 활동하였다. 그 후 동학정신은 항일의병 항쟁과 3.1독립운동으로 계승되었다.

* 상주동학교당의 유래 *

2대교주 최시형을 이은 3대교주 손병희가 천도교를 창시하여 순수교단을 표방하고 이념에서 벗어나자 공주에서 활동하던 김주희 선생이 탄압을 피하여 보은으로 숨어 들어 처음에는 경천교라고도 하였으나 1915년에 동학의 정신을 계승하여, 동학교라고 하였다. 동학교는 일제의 문화정책에 따라 보수적인 종교로 인정받아 1922년에는 조선총독부의 공인을 얻어 1924년에 현재의 동학교당을 창건하고 동학경전, 가사 등 대대적인 간행사업으로 이념 위주의 교세 확장을 꾀하였다. 그 후 1936년 일제에 의하여 공인 취소되었으며, 일제의 탄압을 계속하여 받아왔다.

[문화재 정보]
지정종목 : 시도민속자료
지정번호 : 경북민속자료 제120호
지정연도 : 1999년 12월 30일
시대 : 조선
종류 : 가옥
소장유물 : 유물 177종, 1,084점 (민속자료 제 111호)





임란북천전적지

- 홈페이지 : http://www.sangju.go.kr/tour
http://www.cha.go.kr
* 임란 당시 호국의 성지, 임란북천 전적지 *

임란 북천 전적지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중앙군과 향군이 왜군의 주력부대와 회전하여 900여명이 순국한 호국의 성지이다. 1592년 왜군이 부산에 상륙하자, 이를 막기 위해 조선의 중앙군 약 60여 명이 남하하였다. 이들과 상주 판관 권길, 박걸이 밤새워 소집한 장정 800여명 등 900여명이 17,000여 명의 왜병과 분전하여 전원이 순국한 곳이다. 1988년 지방기념물 제77호로 지정되었다.

* 임란 당시 순국한 사람을 배향하는 충렬사 *

충렬사를 건립하여 그 당시 순국한 윤섬, 권길, 김종무, 이경류, 박호, 김준신, 김일, 박걸, 무명 열사의 위패를 배향 하였다. 매년 양력 6월 4일 제향 행사를 거행하여 그 분들의 넋을 기리고, 후세들에게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침천정은 조선시대 1577년(선조 10년)에 상주목사 정곤수가 상주읍성 남문 밖에 건립하고 연당이라 이름지어 선비들의 휴식처나 글 짓는 곳으로 사용하던 관정이었다.

[문화재 정보]
지정종목 : 시도기념물
지정번호 : 경북기념물 제77호
지정연도 : 1988년 9월 23일
시대 : 조선
종류 : 전적지





정기룡장군유적지

- 홈페이지 : http://www.cha.go.kr
* 임란 당시 명장 정기룡 장군을 모시는 곳, 충의사(정기룡장군 유적지) *

충의사는 조선 선조 때 무장으로 임진왜란시 육전의 명장으로 큰 공을 세우신 정기룡장군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충의사, 신도비, 장군 묘소와 같이 1974년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 13호로 지정되었고, 1978년 호국유적 정화 사업으로 당초 16.5m² 정도의 사당을 약 13,223m²의 부지에 사당, 전시관, 관리사무소 등으로 확장 정비한 호국사상의 성지이다. 전시관에는 보물 제 669호인 5점(교서 2점, 교지, 신패, 옥대 각 1점)과 동산문화재(교지 19점, 매헌실기 판목 58판)를 전시하고 있다. 또한 매년 10월 무렵 지역 주민이 임진왜란 당시 상주성을 탈환하던 장면을 재현하여 장군의 호국사상을 홍보, 계승하고 있다.

* 임진왜란 당시의 명장, 정기룡 장군에 대하여 *

정기룡 장군은 1562년 (명종17년) 경남 하동군 금남면에서 출생하여, 20세 때 상주로 천거, 25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왕명에 의해 기룡으로 개명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적은 군사로 크고 작은 60여회의 싸움에서 많은 왜병을 물리쳤다. 상주판관으로 있을 당시 격전 끝에 상주성을 탈환하였다. 이후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경상도방어사, 3도통제사 겸 경상우도수군절도사로 재직하다가 병사하였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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