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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가족 추천 코스

[경기 양주시][가족 추천 코스] 경기도 양주 현장학습 1일 코스

by 어느 개발자의 블로그 2021.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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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현장학습 1일 코스

도심의 인구가 몰려들고 있는 양주의 체험학습 여행지다. 도심에서도 가깝고 양주의 거주민이 늘어남에 따라 볼거리 놀거리 들이 많아졌다. 자녀와 함께 하기 좋은 문화 유적지와 시설을 소개하는 즐거운 코스다.
※ 소개 정보
- 코스 총거리 : 76.33km
- 코스 총 소요시간 : 1일


 




필룩스 조명박물관

필룩스 조명박물관

- 홈페이지 : 조명박물관 http://www.lighting-museum.com
조명박물관은 2004년에 설립, 2005년 등록(제05-박-05호)한 대한민국 유일의 조명 전문 박물관으로 다음과 같은 설립 목표를 갖고 있다.

* 사라진 고유한 조명문화를 복원하고 재생시킨다.
* 빛의 과거, 현재, 미래를 제시하여 인류 조명문화를 재발견한다.
* 미래지향적인 융복합 조명문화를 창조한다.
*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고 발전하는 건강한 빛의 문화를 정립한다.





양주 회암사지

양주 회암사지

- 홈페이지 : http://www.cha.go.kr
회암사는 고려충숙왕 15년(1328) 인도의 고승 지공화상이 창건하였고, 우왕 2년(1376) 지공의 제자인 나옹이 다시 지었으며, 조선 성종 3년(1472) 세조비 정희왕후의 명으로 삼창되어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걸쳐 번창하였던 국찰이었다. 특히, 태조 이성계의 각별한 관심으로 나옹의 제자인 무학대사를 회암사에 머무르게 하여 불사가 있을 때마다 대신을 보내 찰례토록 하였으며, 이성계가 왕위를 물려주고 난 뒤 회암사에서 수도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태조 이성계 이후 성종3년(1472) 정희왕후가 하성부원군 정현조를 시켜 중창 시켰으나, 당시 억불숭유정책이 심화되면서부터 회암사는 여러 차례 유생의 상소와 함께 특히 명종 때 불교를 중흥하려던 문정왕후의 죽음으로 보우대사가 제주도로 유배된 이후 쇠망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으며, 이후 보우대사가 유배지에서 피살되고 덩달아 회암사 승려까지 미움을 받게 되니 200여년 동안 번성하던 회암사는 빈 집이 되어 버렸다. 이 때부터 점차 퇴폐해지기 시작하여 어느 때인지 모르게 풍상과 함께 회암사는 인멸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번성기 때 회암사의 규모는 전각이 총 262간이었고, 암자도 17개나 되었으며 또한, 모셔진 불상도 15척짜리가 7구나 있었다고 하며, 관음상도 10척이나 되어 당시 회암사는 크고 웅장하며 아름답기가 동국 제일로서 이런 절은 중국에서도 많이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후 대사찰이 폐사되면서 순조 21년(1821년)에 이응준이란 자가 술사 조대진의 말을 듣고 이 곳 법당자리에 선친의 묘소를 옮기기 위하여 절터에 남아있던 지공과 무학의 비를 철거하였으나 이 사실이 알려지자 나라에서 두 사람을 섬으로 유배하고 순조 28년(1828)에 비를 원래의 위치에 다시 세웠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운허요하가 쓴 "천보산 회암사 대웅전 창건기"에 의하면 1828년에 탑비를 다시 세우면서 조그만 암자를 지어 가람을 수호하고, 옛 회암사를 잇게 했으며, 1922년 봉선사 주지 홍월초화상이 새로 보전을 지어 불상을 봉안하고 지공, 나옹, 무학의 세 화상의 진영을 모셨다고 한다. 이후 1977년에 호선대사가 서북쪽에 큰 법당을 지어 오늘의 회암사에 이르게 되었다.

후설에 의하면 회암사의 폐사는 빈대가 많아 불을 태워 없앤 절로도 알려져 있으며, 당파 싸움으로 인하여 소실됐다는 설도 있고 또한 절의 크기에 대해서 가마솥 안에 들어가 팥죽을 쑬 만큼 절의 규모가 컸다고 하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쌀을 씻는 함지박이 너무 커 사람이 빠져 죽어도 모를 정도였으며, 전국을 다니다가 만나는 승려들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 "회암사에서 왔다고 할 만큼 승려 수가 많았다"고 한다. 옛 회암사는 문헌상 동방의 첫째였고 우리나라의 국찰이었으나 폐허가 된 후 사지에 석벽과 기단, 계체 등 일부만 남아 있었던 것을 1964년 이곳을 국가지정 사적 제128호로 지정하여 보존.관리해오다가 1996년부터 우회도로 개설과 사지에 대한 장기적인 조사. 발굴 계획을 수립하여 현재 경기도 박물관에서 조사. 발굴하고 있으며, 앞으로 사적지내 사유지를 매입하고 원형 그대로 발굴한 후 문화와 역사적 가치창출로 지역의 전통문화를 활성화시키고 역사적 교훈이 될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으로 있다.

* 문화재

회암사지 선각왕사비(보물 제 387호), 회암사지 부도 (보물 제388호), 회암사지 쌍사자석등 (보물 제389호), 회암사지 멧돌 (경기도 민속자료 제1호), 지공선사 부도 및 석등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49호),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50호), 무학대사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1호), 회암사지 부도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52호), 회암사지 당간지주 (향토유적 제13호)





점심식사(청암 피자성효인방)

점심식사(청암 피자성효인방)

- 전화번호 : 031-855-5220
※ 영업시간 10:30 ~ 21:00

일반음식점과 달리 20년 전통의 휴식공원식 패밀리 레스토랑이다. 약 10,000여 점의 민속생활용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각 테마관에는 테마별로 인형들이 그 모습을 재현하고 있어서 재미를 더한다. 120여 그루의 웅장한 분재형 소나무 그늘 밑에 약 2만수 이상의 앵초를 비롯한, 구절초에 이르기까지 각종 야생화와 꽃이 1년 내내 만발하므로 허브향과 함께 항상 꽃향기가 가득하다.

철길, 멧돌길, 오솔길 등 산책로도 있으며 토속적 이미지가 풍기는 가족단위의 휴양지로 소박한 분위기와 아이들의 교육에도 좋은 환경이다. 야외 웨딩촬영 장소로, 각종 단체 행사 및 세미나, 야외 결혼식(아트홀, 세미나실 완비)이나 50명 단위 단체 회의장으로도 이용 가능하다.





청암민속박물관

청암민속박물관

- 홈페이지 : 청암민속박물관 http://www.cheong-am.co.kr/
https://www.yangju.go.kr/tour
청암민속박물관은 야생식물원과 박물관 그리고 체험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약 12,000여점의 민속생활용품과 수백종류의 야생화단지를 견학하고 민속놀이인 그네타기, 널뛰기, 윷놀이, 투호놀이 등 다양한 민속체험이 있으며 피자성 효인방이 있어 피자만들기체험도 할 수 있다.





양주향교

양주향교

- 홈페이지 : http://www.yangju.go.kr/www/index.do
1401년(태종 1)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6•25 때 폐허화되었던 것을 1959년에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무(東廡)•서무(西廡)•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정원 5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이 향교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양주 온릉

양주 온릉

- 홈페이지 : http://royaltombs.cha.go.kr/
※ 군사시설보호구역 내에 있어 공개하지 않고 비공개로 관리해온 양주 온릉 개방
※ 2019년11월14일 무료 시범 개방
※ 시범 개방대 대한 문의사항 : 02-6450-3837

조선 중종(中宗)의 원비(元妃) 단경왕후(端敬王后) 신씨(愼氏)의 능이다. 왕후는 연산군 때 좌의정이며 연산군의 처남인 신수근(愼守勤)의 딸로 1499년(연산군 5) 13세로 진성대군(晉城大君)이던 중종과 가례를 올리고 반정(反正)으로 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으나 반정과정에서 반정 주체세력이 신수근을 살해하고 왕에게 강권하여 폐출시켰으며 왕후는 1557년(명종 12) 사저에서 71세로 승하하여 신씨 묘역에 묻혔다가 1739년(영조 15)에 복위되어 묘호를 단경, 능호를 온릉이라 부르게 되었다. 뒤에 곡원(曲垣)을 두르고 석양(石羊)•석호(石虎) 각 2필로 호위하게 하였고 능 앞에는 상석(床石)과 장명등을 세우고 망주석(望柱石)• 문석(文石)•마석(馬石)을 배치하였다. 동물 모양의 조각을 반으로 줄인 것은 비릉(妃陵)으로 봉해진 무덤의 예에 따른 것이다. 무덤 아래에는 제사지내는 방(제실)이 있었으나 1970년 도로 확장 때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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