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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가족 추천 코스

[전북 순창군][가족 추천 코스] 순창의 맛, 고추장

by 어느 개발자의 블로그 2021.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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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의 맛, 고추장

맑고 청정한 순창은 고추장 맛으로 대한민국을 사로잡았다. 순창의 고추장을 만나러 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로 간다. 장류박물관, 장류체험관이 있어 고추장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 직접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다. 강천사를 둘러보고 순창읍내에 남아있는 두 기의 석장승과 향교도 만나보자. 순창의 산과 들을 적시며 흐르는 섬진강에서 여행을 마무리 한다.
※ 소개 정보
- 코스 총거리 : 23.5km(강천사 왕복 4km 포함)
- 코스 총 소요시간 : 8시간


 




강천사

강천사

- 홈페이지 : http://gangcheonsan.kr
강천사 군립공원 입구에서 1.8km 지점에 위치한 강천사는 신라 진성여왕 원년(887년)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그 후 번창하여 고려 충숙왕 3년(1316년) 덕현선사가 사찰을 중창하고 5층 석탑을 세웠고 한때 12개 암자와 1천여명의 승려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 석탑만 남고 모두 소실되었다. 선조 37년 (1604년)에 소요대사가 재건했으나 다시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59년 원상대로 복원하였다.충신리와 남계리, 석장승, 순창객사, 순화리 3층 석탑 등의 문화재가 있으며 주변 관광지로 금성산성, 용소폭포, 강천호, 담양호, 추월산, 희문산, 내장산국립공원 등이 있다.





순창장류체험관

- 홈페이지 : 순창군 문화관광 http:///www.sunchang.go.kr/tour/
전라북도 순창읍 백산리 전통고추장 민속마을 앞에 위치한 순창장류체험관은 순창장류 전통의 맛과 멋을 그대로 이어가면서 장류산업의 세계화를 널리 연구,보급, 홍보하고자 설립된 체험관이다.순창장류체험관에서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고추장인 순창전통고추장을 직접 만들어 가져갈 수 있고, 순창전통고추장을 이용한 맛있는 요리를 직접 만들어 시식해 불 수 있는 열린 체험의 공간을 제공한다. 요리체험장, 야회학습장 등 전통장류 체험에 필요한 다양한 시설들을 마련하였고 국내 뿐만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장류문화를 체험하고 관광시킬 수 있는 체험관이다.





점심식사(옥천골한정식)

옥천골한정식

- 전화번호 : 063-653-1008
옥천골한정식은 연탄불에 직접 익힌 돼지불백과 소불고기, 20여 가지가 넘는 반찬들과 된장찌개까지 옛 정취 그대로의 손맛이 살아 있는 곳이다. 음식재료가 되는 채소뿐만이 아니라 상에 오르는 쌀까지 직접 농사지은 것들이다.




충신리석장승

- 홈페이지 : http://tour.sunchang.go.kr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에 있는 석장승은 순창읍에서 북쪽으로 약 500m지점 임실을 거쳐 전주로 가는 대로변 오른편 (동쪽) 논둑에 서 있다. 순창은 풍수상으로 북풍을 막기 위해서 옛날에는 이곳에 비보림이 있었고 숲 속에 당이 있었으나 지금은 당우는 없고 당 앞 좌석에 석장승이 있었다고 한다. 비보림 안에 있는 당에서는 40여년 전까지 매년 상원전에 당제를 올림으로써 마을 안녕과 동민들의 무재와 풍작을 기원했으나 당도 없어지고 당제도 단절되었고 석장승 1기는 도로확장공사시에 치웠다가 새마을 운동이 일면서 없어졌다고 전한다.

순창읍에서 동쪽 남원으로 가는 신작로에서 200여m 가량 들어간 구로변에도 석장승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순창읍으로 들어오는 동서남북의 길목에 각각 석장승이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구통로 사방에 있는 것으로 미루어 마을을 수호하고 부정의 출입을 제지하고 퇴축귀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순창은 농업과 잠업이 성한 곳이어서 특히 양잠을 위해서는 방액이 요망되었으며 당제끝에 장승제를 지낸 것도 생업을 보장 받으려는 소박한 민간신앙 의식에서 유래하였을 것이다.

지상에 솟은 부분만도 180㎝에 이르니 지하에 묻힌 부분을 감안하면 근 3m나 되는 장대한 자연석에 얼굴을 양각하였다. 석재의 상부가 좌로 약간 굽어 매우 애교있는 모습지만 남장승으로 알려져 있다. 나주나 남원의 석장승과는 달리 눈이 작고 큰 코에 입은 상징적인 표현이며 눈썹부분이 뚜렷하다. 이마와 양 볼 아래에 혹이 있어 이채롭다. 이마의 혹이 불상에서와 같은 인상이며 볼 아래의 좌석에 있는 혹은 여러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즉 혹이 볼부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턱과 같은 높이의 부위에 있어서 유방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마의 혹과 함께 여인이 연지를 찍은 것을 뜻하는지 분명치 않다.

남상이라고 현지에서는 전승되어 있으나 남장승이라면 유방일 수가 없고, 유방이라기에는 너무 위에 위치하고 있어서 확인하기가 어려운 상태이다. 대개의 석장승이 몸체에 음각자를 해서 성을 나타내고 있으나 충신리 장승에는 명기가 없다. 사람의 얼굴에 가까운 소박한 노인상 같아서 친근감이 가며 기량이 모자라는 석공의 솜씨에 의해서 조각된 것이란 인상이다. 몸 둘레는 170㎝나 되고 북향한 것으로 보아 없어진 석장승은 북에 위치해서 남향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순창남계리석장승

- 홈페이지 : http://tour.sunchang.go.kr
순창읍 남계리에 홀로 서있는 돌장승이다. 원래는 한 쌍으로 세워졌던 듯 하나 지금은 하나만 남아 있다. 순창읍에서 남원으로 가는 길의 개울둑을 타고 200m쯤 가면 돌장승이 서 있으며 마을의 평화와 주민들의 건강을 비는 뜻으로 세운 것이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마을 북쪽의 기(氣)가 약해서 북풍을 막기 위한 숲을 만들고 근처에 마을을 지키기 위한 장승을 세운 것인데, 지금은 숲이 벌채되어 논으로 만들어진 상태라고 한다. 매우 큰 자연석을 사용하여 앞부분만 조각한 이 장승은 성인 남자의 키와 비슷하다. 전체적으로 살찌고 무거운 모습이며 옆으로 찢어진 가는 눈, 가늘고 손상된 코에 입은 작으면서 장난스럽게 혀를 조금 내민 모습이다. 이마와 양 볼에 둥근 점을 튀어나오게 조각하였는데 주민들은 이 장승을 남장승이라고 하지만 볼의 혹이 연지 찍은 모습을 연상하게 해 여장승으로도 보여진다. 제주도의 돌하루방처럼 양손이 표현되었는데 손가락까지 뚜렷하다. 보통 장승이 얼굴 부분만 표현한 것과는 달리 손가락 등을 조각해서 사실적으로 나타낸 것이 특이하다. 이 장승은 조선시대의 것으로 만들어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토속적이고 민중적인 예술작품이라는 점에서 연구가치가 있는 민속자료이다.





순창향교

순창향교

- 홈페이지 : http://tour.sunchang.go.kr
http://tour.jb.go.kr/index.do
http://www.cha.go.kr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교성리에 있는 향교. 1413년(태종 13)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그 뒤 군수 김수광(金秀光)이 군 북쪽의 옥천동으로 이건하였으며, 1560년 군수 신련(申璉)이 중수하였다. 1661년에 군수 윤완지(尹完之)가 이건하였고, 1694년 낙뢰로 파괴된 것을 1713년에 군수 조태기(趙泰期)가 오산 아래로 이전하여 중창하였다. 1950년에 6•25사변으로 소실되었다가 1959년 군수 김인덕(金仁德)이 중수하였으며, 1974년과 1975년에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향교의 대성전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6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 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다. 그러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현재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섬진강

- 홈페이지 : http://tour.sunchang.go.kr
섬진강은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팔공산의 서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흐르다가 정읍시와 임실군의 경계에 이르러 갈담 저수지를 이룬다. 순창, 곡성군, 구례군을 남동쪽으로 흐르며 하동군 금성면과 광양시 진월면 경계에서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지리적으로는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경상남도의 3도에 걸쳐 있고 역사적으로는 고대 가야문화와 백제문화의 충돌지대, 신라와 백제의 경계, 임진왜란과 정유왜란 때는 왜군의 침입경로였으며 조선시대 말기에는 동학농민전쟁이 승화되기도 한 장소이다. 주요 지류로는 정읍시 산내면에서 합류되는 추령천을 비롯해 일중천, 오수천, 심초천, 경천, 옥과천, 요천, 수지천, 보성강, 황전천, 서시천, 가리내, 화개천, 횡천강 등이 있다.

본래 섬진강의 이름은 모래가 고와 두치강, 모래가람, 모래내, 다사강, 대사강, 사천, 기문하 등으로 불렸으며, 고려시대인 1385년(우왕11)경 섬진강 하구에 왜구가 침입하자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 갔다고 하는 전설이 있어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했다고 한다. 하류의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는 840년에 중창된 신라의 고찰인 쌍계사와 불일암, 불일폭포가 있다. 명산물로는 은어와 참게를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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